노기충 6.25참전국가유공자회 청주시지회 고문 겸 안보강사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6년이 되는 날이다.
66년 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고 이제 백발의 노인이 돼 전쟁의 기억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아가고 있는 6.25 참전용사가 충북에 5181명, 청주에 1542명 있다. 구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전용사들의 권익보호와 학생들의 안보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는 노기충(90) 6.25참전국가유공자회 청주시지회 고문 겸 안보강사를 만나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과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눈에 잡힐 듯 한국전쟁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께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북한군이 삼팔선을 넘어 물밀 듯이 쳐들어 왔어요.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 4만 여명이 죽고 4000여명이 포로로 끌려갔을 정도니까요.”

갑종장교 소위로 당시 강원도 춘천 6사단 7연대 1대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던 노 고문은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돼 죽어가는 후임병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전쟁을 경험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노 고문은 아직도 거리에 시체가 끝없이 쌓여있던 당시의 상황을 꿈꾼다고 한다. 꿈에서 조차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당시의 상황은 참혹을 넘어 비극에 가까웠다.

이달 초 6월 달력을 보면서 그날의 전우 얼굴이 떠올라 화장실에서 1시간 넘게 숨죽여 울었다. 후임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가슴이 미어졌다. 먹을거리를 운반하던 병사들이 인민군에 의해 죽으면 미군이 수송기로 건빵을 던져주기 전까지 몇 날 며칠을 굶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들이라 더욱 애통하다는 노 고문.

한국전쟁의 뼈아픈 기억만큼 그에겐 많은 참전용사들이 국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참전유공자가 국가유공자가 됐긴 했지만 그 예우 면에서 별다른 혜택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에 걸 맞는 예우를 해주길 바랍니다.”

노 고문은 ‘젊음’을 조국에 바쳤던 참전용사들이 나이가 들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슬픔이지만 학생들이 6.25전쟁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지내는 모습을 볼 때 자신들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가 10여 년 동안 통일교육명예전문위원과 재향군인회 안보강사로 2000여회에 안보강의를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초·중·고·대에서 최근까지 2000여 차례 안보교육을 펼쳤습니다. 초등학교 강의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학생들이 질문하면 ‘미국과 일본이 싸운 전쟁’, ‘소련과 미국이 싸운 전쟁’ 등 제대로 아는 학생들이 없어요. 그런 상황이 서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죠.”

역사를 바로 알아야 그 안에서 비판의식도, 애국심도 나오지 않겠냐는 노 고문은 참전용사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보교육 등을 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 맺힌 역사의 응어리가 참전용사들의 가슴 속에서 딱딱하게 굳기 전에 노 고문은 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그는 1927년 대전 출생으로 경희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대위(갑종 54기)로 예편했고 대통령 위촉 평화통일자문위원과 통일보 통일교육 전문위원, 재향군인회 안보교육강사, 육군 예비군동원부대 위촉강사, 대한민국 6.25참전 서울지부 안보부장, 재향군인회 안보강사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김재옥 / 동양일보 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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