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사정으로 충북 청주에 살게된지 벌써 4개월이 되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결 같이 묻는 것 중에 하나는 “청주 어때요?”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청주가 좋아요, 옛스러움이 있어 좋아요”라고 늘 답한다.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말한 적이 없는데 오늘 이 지면을 빌려 털어놓고자 한다.

내게 아름다운 도시란 ‘오래되어 아름다운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사소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우선 내가 거주하는 서원구라는 지명이 좋다. 단순하지만 서원경(西原京)이라는 옛 지명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서원경은 신라시대의 중요지방도시로서 9주 5소경 중의 하나인 행정지명이다. 이 도시가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곳이고 가장 중요했던 도시 중에 하나였던 것을 상기 시킨다. 이 오래된 도시에 내가 현재 살고 있다는 사소한 이유가 나는 좋다.

또 다른 구역인 상당구라는 지명도 좋다. 상당은 당연히 충청북도의 대표산성 중 하나인 상당산성을 떠올리게 된다. 상당산성은 누대에 걸쳐 충북의 보루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 원균이 수축을 한 적이 있고,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군이 점령한 적도 있는 유적지다. 지금은 주말 나들이 가기 좋은 곳으로 평화스러운 분위기지만 한때는 피 흘리던 역사 속 현장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를 만들어낸 흥덕사지를 떠올리게 하는 흥덕구도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내게 자부심을 주는 이유 중에 하나다.

역사성이 없는 도시는 매력이 없다. 역사성이 없는 도시란 잘 지은 조립식 주택과 같다. 조립식 주택은 보기에는 좋지만 진정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충북에는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다. 감동을 주는 장소가 많다. 충주의 탄금대는 내가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다. 탄금대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과 병사들이 왜놈들에게 맞서 배수진을 친 곳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심정으로 맞서 싸운 격전의 현장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며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희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옥천의 정지용생가도 좋아하여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옥천의 아름다운 들녘에 서면 일제 강점기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절로 생각하게 된다. 차마 꿈엔들 잊혀지지 않을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 있고 지키고 싶은 그런 마음의 고향 말이다.

오래된 도시에는 오래된 골목이 많다. 오래된 골목이 많다는 것도 이곳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수암골이나 사직동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면 골목마다 옛 정취가 묻어있다. 이런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 하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던 동네의 소박한 풍경, 모기차가 지나가면 쫓아가던 한 무리의 아이들 모습, 카드를 넣는 공중전화기, 천장이 낮은 구멍가게들이 아련하고 애틋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느낌은 최근 지어진 주상복합도시나 신도시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것은 낡은게 아니라 ‘새로움’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감정의 새로움’을 말한다.

내게 있어 아름다운 사람이란 오래되어 아름다운 도시와 결코 다르지 않다. 나는 오래된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최근 ‘혐(嫌)’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상에 많이 보인다. 혐을 넘어선 극혐까지도 보인다. 공격하는 대상은 주로 지역주의와 기성세대, 여성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 할 만한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일 것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기성세대들을 묶어 꼰대로 칭하거나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곧 우리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성세대의 과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가 아니라 존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먹는 문제가 삶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독재와 탄압으로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열심히 경제를 이끌다 IMF로 직장을 잃고 좌절을 느낀 세대들 모두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가치를 지키고 쟁취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버텨온 분들이다. 아직도 그분들에게는 먹을게 가장 중요하고, 민주주의와 좋은 직장과 가족에 대한 헌신이 제일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오래된 사람들은 나름의 시대적 역사성을 갖고 그들이 그 시대에 갖지 못했던 것을 우리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밥을 먹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씀에는 이미 먹고 살기 고단했던 예전 시대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오래된 도시는 아름답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를 하는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오래된 사람도 아름답다. 그들이 걸어온 삶의 지난한 흔적이 참으로 눈물 겹고 아름답다.
시대에는 그 시대 나름의 가치가 있다, 오래된 사람들을 증오하는 세대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2016년에는 갈등과 반목이 넘치기 보다 시대와 세대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많길 기대한다. 오래된 것이 불호(不好)와 혐오의 이유가 아니라 좋고, 옳으며 마땅한 호(好)의 이유 중에 하나길 빌어본다.

이기수 / 충청북도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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