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고, 볕이 따뜻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섯다가 내친김에 쑥이라도 조금 뜯을까 싶어 산자락으로 이어진 구릉으로 들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양지꽃 광대나물 노란 민들레꽃이 더러 보입니다.

“부지런도 하여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묵은 쑥대를 밀쳐내자 그루터기마다 다복다복 쑥이 고개를 들고 눈인사를 건넵니다. “다복다복 다복례야 너 어디로 울며 가니 / 우리 엄마 젓먹으러 양지무덤 찾아간다” 어린 시절 쑥을 뜯으며 흥얼 거리던 노랫말이 어느새 입가를 맴돌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다복한 쑥을 손으로 몇 번을 어루만져봅니다. 보드라운 숨결이 손 안 가득 전해집니다. 아직은 비릿한 향이 콧등을 간질입니다.

쑥국을 끓입니다. 쌀뜨물을 받아 물근하게 된장을 풀고 물이 푸르르 긇어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콩가루 골구루 묻힌 쑥을 넣고 한 소큼 끓여냅니다. 먹기 전 들깨가루 한 숟가락 넣으면 쑥국 완성. 오래 끓이면 쑥이 질겨 지기 때문에 호로록 끓여 냅니다. 쑥의 오롯한 향을 느끼기 위해 파 마늘 같은 양념도 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긇여주던 맛입니다. 별거 아닌 그 맛, 별거랄 것도 없는 그 맛이 시간을 더 할수록 점점 더 그리워 지는것입니다. 때 맞춰 들어온 햇살 한 줌, 닝닝하던 마음에 푸릇한 봄향기가 번집니다. 뭉게뭉게 흰구름이 하늘 한 편을 덮고 있습니다. 함께 숟가락을 부딪히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쑥을 덤불째 주섬거려 오면 마루에 검불하나 없이 골라 다듬던 할머니, 엄마 아빠 놀이에서 늘 아빠를 맡았던 콧날이 오독한 그 아이.

어디서나 자리를 탓하지 않고 쑥쑥 잘 자란다하여 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참 그 이름 걸작입니다. 쑥은 불로초라고 할 만큼 몸에 좋고, 또한 버릴 게 하나 없다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쑥을 사시사철 곁에 두었습니다. 이른 봄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은 두레 밥상에 있었고, 단오쯤에는 웃자란 잎을 뜯어 떡을 만들어 먹었고, 단오 날 해뜨기 전 베어서 처마 밑에 말려 놓은 쑥은 여름 내내 모기퇴치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잘게 비며 막힌 혈을 뚫기 위해 뜸을 뜨기도 했습니다. 몸에 종기가 나거나 가려울 때도 무쇠솥에 쑥을 넣고 푹푹 끓여 그 물에 종기를 씻어내거나 바르곤 했습니다. 보릿고개 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던 쑥 버무리가 요즘은 봄철 별미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밖에서 놀다 넘어져 피가 나거나 낫이나 칼에 손가락을 베면 쑥을 뜯어 손으로 싹싹비벼 상처에 붙여 지혈을 시켰습니다. 쑥은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보약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로 모든 것을 보듬어 왔습니다.

봄은 봄입니다. 육거리시장을 한바퀴 휘~ 돌았습니다. 마트에도 시장골목 좌판에도 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습니다. 우수경칩이 지나고, 바람이 두꺼운 외투벗기기 시합에 여념이 없지만 그래도 쑥국을 먹고 나서야 마음으로도 봄을 느낍니다.

신준수 /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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