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 연휴에 3,645만 명의 국민들이 대이동을 했으니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떨어져 지내던 우리 가족도 시골집으로 향했다. 미리 와있던 동생내외, 조카들이 차례상 준비를 하며 왁자지껄 웃음꽃이 담을 넘는다. 거실이 비좁아 안방의 장지문을 떼어내 거실과 통하도록 했다. 가족이 함께하는 우리의 설은 ‘온돌의 훈기’를 나누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한국인들에게 체질처럼 각인된 공동체적 심성은 온돌의 주거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동북부에서 사용되다가 4∼5세기경 고구려와 백제 쪽으로 전파되었다고 전해진다. 옛 발해 궁궐터나 고구려 벽화 등에서 온돌양식의 역사적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불로 방바닥을 덥힌 뒤 온기와 열을 전도시켜 방 전체를 훈훈하게 해주는 온돌은 공동주택이 보편화된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사람은 아래가 따뜻해야 하고 개나 돼지는 주둥이가 따뜻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고대 주거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고려 중·후기에 온돌이 등장했다. 아궁이가 방 안에서 밖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고 가사노동의 상당부분이 방 밖으로 나오면서 방은 휴식공간으로 바뀌었다. 명절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안방이나 건넌방 구들장에 발바닥을 맞대고 앉아 온돌의 온기를 느끼며 음식을 나누고 윷놀이를 즐긴다.

문화는 생활양식을 낳고 정서와 가치관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온돌은 좌식座式문화를 가져왔다. 방에는 윗목, 아랫목이 있어서 앉은 위치에 따라 집안의 서열이 나뉘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이 아랫목의 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덕담을 듣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통문화는 우리의 글과 생활 속 의식주衣食住에 배어있다. 한글은 휴대폰 시대를 맞아 이미 그 독창성과 과학성이 세계에 입증되었다. 우리의 인쇄술은 서양보다 훨씬 앞서 있음이 자랑스럽다. 생활문화에서 의衣는 한복으로 오늘날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식食은 한식의 꽃인 김치로 이미 살아나 종주국의 면모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주住에서만은 한옥이 있으나 한옥의 핵심인 온돌이 세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못내 아쉽다.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우리 전통 온돌방의 구조는 우리 조상들이 발명한 걸작품이다. 또한 대대손손 발전시켜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발달 되었다.
전통 온돌인 구들의 구조는 중국동북의 한족漢族이나 만족滿族의 캉炕과 비할 수 없다. 그리고 집안 단위면적의 축열량과 그 이용 효과가 높다.

우리민족은 아랫목에서 태어나고 아랫목에서 뒹굴면서 자란다. 또 애기를 낳거나 아플 때 아랫목에서 지진다. 늙어 병들면 아랫목에서 누워 치료하다가 세상을 뜬다. 죽음으로 아랫목을 떠났다가 결국 제사상이나 차례상도 아랫목으로 다시 돌아와 받는다. 한민족은 살아있거나 죽은 후에도 아랫목과 떨어질 수 없는 아랫목 온돌 인생인가 보다. 보건 의학적으로도 임산부나 노약자가 온도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가장 좋은 난방은 온돌이라고 한다.

집은 온돌을 보호하고 온돌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절묘한 구조로 되어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이라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온돌이 방바닥에 있다. 장마철의 습기는 진흙이 흡수했다가 건조하면 방출하여 방의 습도를 조절해 준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구들 고래가 막아주고 겨울에는 지열을 구들 고래가 저장해 준다.

우리네 어머니는 아들을 낳은 후에도 부뚜막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습관이 있다. 그렇기에 산후조리를 몇 달씩 하지 않아도 되었다. 금방 정상적인 생활에 복귀하여 회복시간이 아주 짧았다. 아궁이에서 불을 땔 때 장작의 원적외선과 부뚜막의 황토 흙에서 나오는 각종 좋은 열선들이 있다. 이것이 우리네 어머니의 자궁부위를 소독하고 회복시키는 중요한 치료 역할을 했단다.

궁궐이나 집의 구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과학적 발명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고도의 물리학과 유체역학을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형태의 구들을 우리네 조상은 이미 수 천 년 전에 발명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한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온기를 지속했다는 우리 조상의 작품인 아자방亞字房을 우리는 다시 재현할 수 없을까.

중국의 학자들은 온돌의 종주국이 중국이라고 하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정부에서는 온돌 전시장과 온돌 박물관을 짓고, 온돌문화가 남아있는 수많은 사찰과 궁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일이다. 또한 온돌 장인에 대하여 무형문화재 제도 도입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은 미룰 일이 아니다.

이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를 새로이 새겨 온돌의 찬란한 구들 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정 관 영 / 공학박사 • 충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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