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와 함께 하는 생각하는 독서- ‘눈길’ <이청준 지음>

요즘 유행어 중에 ‘금 수저’, ‘흙 수저’라는 말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모 덕 본 사람은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아무 노력 없이 부모 잘 만나 호강하며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부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풍자하고 있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에는 흙 수저조차 물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식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형의 주벽으로 집이 파산하면서 어머니의 물질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나’ 역시 삶이 버거워 어머니에게 자식 된 도리를 못하였으니 서로에게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는 처지이다 보니 ‘나’는 어머니를 제 3자 대하듯 ‘노인’이라 부른다.
그런 그가 노모가 사는 시골 단칸방에서 하룻밤 지내는 동안, 아내와 노모와의 대화를 듣고는 그동안 외면해온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형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고 집마저 팔려나갔을 무렵이다. 멀리서 ‘나’가 온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편안한 집에서 밥 한 끼 해주고 싶어 집이 안 팔린 것처럼 옷궤를 잠시 다시 들여놓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산길을 걸어 차부까지 아들을 배웅한 어머니는 돌아오는 길에 눈 위에 난 아들 발자국을 보면서 눈물을 떨군다.

“산비둘기만 푸르륵 날아가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가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
“오목조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 미안함, 그리움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눈 덮인 자신의 집 지붕까지 아침햇살이 활짝 퍼져있는 것을 보고는 한동안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없었다. 시린 눈을 해가지고 햇살이 부끄러워……. 햇살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을 자식에게 비추어주지 못한 부모인 것이 부끄러워…….

‘눈길’에 나오는 어머니는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것이……. 그러고 보니 ‘어머니’란 단어는 참으로 애달프다. 불러만 보아도 눈물겹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않는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자식들은 시간이 흐르고 철이 든 다음에야 뒤늦게 깨닫기 때문일까?

자식에게 금 수저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 가진 게 없으니 물려줄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가슴 아픈 것이다. 하지만 금 수저보다 더 한 것을 이미 우리 부모들은 물려주셨다.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라는 정신적 가치를…….

2016년 붉은 원숭이해가 밝았다. 원숭이도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자식사랑이 지극한 원숭이처럼 자식을 위해 고생하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새해에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리하여 어머니들의 얼굴에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연인형 /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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