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수 보은무료급식소장

2015년 선행봉사부문 충북도민대상을 수상한 김양수(69) 보은무료급식소장. 보은읍에서 지역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를 13년간 하고 있다. 해가 바뀌면 칠순이 되는 김 소장은 매일 아침 장 보는 것으
로 급식소 일을 시작한다. 이젠 누군가에게 밥 해 줄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배곯는 노인들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연세에 비해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역량에
맞게 살면 된다.”고 말하는 김 소장. 소탈하면서도 호탕해 보이는 웃음이 대장부 같다. 김 소장은 이번
충북도민대상 수상전에도 지난 8월에 충북도 모범도민 표창을 받은 모범도민이다.  2010년엔 MBC 방송국 주최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했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봉사생활에 이어 무료급식소 운영까지 오로지 남을 위한 봉사로 남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 김 소장의 이야기는 드라마 보다 재밌고 유쾌하다.

| 김 소장님 고향이 보은이세요? 보은에서만 쭉 사셨나 봐요? _
보은 이평리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지. 태어나기는 이태원에서 태어났어.
7남매 중 막내딸로. 스물두 살에 보은으로 시집와서 49년 살았어.
돌아가신 우리 집 양반이 심성이 곧고 양심이 올바른 사람이었어. 이장을 33년이나 했지.
나도 그때부터 마을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

| 급식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새마을 보은읍회장도 되게 오래 하셨던데. _
2002년까지 새마을 보은읍회장을 15년 했어. 그런데 그 때 보은 경찰서장이 나를 경찰대장 시키려고
읍회장을 못하게 하더라고.(허허) 그래서 3년간 보은경찰서 협력단체 어머니 경찰대장을 했지.
48개리를 다니면서 새마을 부녀회 봉사를 하다 보니 빈곤층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되잖아.
경찰대장을 하니까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더라고.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뭔가 살펴보니 일단 배 곪지 않는 거야. 그래서 무료급식을 생각했지.
당시 이중재 보은경찰서장이 몇 명 후원자를 소개해줘서 그 분들 도움으로 2003년 1월부터 시작했어.
천막치고. 그 땐 국밥을 줬어.

| 천막 급식소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사계절을 다 천막에서 하신 건가요? 겨울엔 추울 텐데… _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다 했지. 춥고, 덥고. 말도 마. 그래도 여름 더위는 참을만해. 겨울이 문제였지. 발이 어찌나 시린지. 연탄불을 피워놓고 했는데, 신발이 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추웠어. (웃음)
음식 준비며 설거지까지 다 해야 하는 데 물 얻기도 힘들고.
여기 있는(급식소 주방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고생 많이 했어.
그 때 생각하면 지금은 진짜 양반이지.

| 그럼 천막생활은 언제 접으신 건가요? 지금 있는 무료급식소 건물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궁금해요. _
지금 이 건물은 땅 사서 내가 지은 거야. 천막 치던 터를 비워 달라니 어떻게 해.
급식소를 그만둘 수는 없고. 다행히 마음 착한 이웃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땅을 살 수 있어서 건물을 올렸어.

| 소장님, 부자이신 가 봐요? _ 에이. 땅 값은 아들한테 갚으라고 했어. (웃음) 덕분에 이젠 겨울이 돼도 따뜻한 데서 밥먹을 수 있으니 좋지. 10년 천막생활 접고 급식소 건물이 생긴지 3년째야.

| 그럼, 급식소 운영비는 어디서 지원받나요? 밥 드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_
하루 80명에서 120명이 와. 장날엔 더많지. 우리 급식소엔 근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급식소까지 거동하기 힘든 고령자들, 75세 이상 노인만 받거든. 우린 배식을 일찍 시작해. 아침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
이 많거든. 오전 8시 30분에 오는 사람도 있어. 아침 일찍 집에서 첫차 타고 나와 일 보고 여기 오는 거야. 아침도 못 먹고. 여기서 먹는 게 그 사람한텐 하루 끼니의 전부가 되기도 하고.
초기에만 후원자가 있고 이후에는 거의 자급자족 하다시피 했어. 현 군수님 취임한 후부터 1인당 2천500원씩 80명분을 지원받아. 그 전엔 뭐…. 돈 걱정하면 못 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지. 고추장,된장 같은 것은 내가 직접 다 담아. 우리 급식소 밥이 다들 맛있다고 해. 따뜻한 국에 반찬까지 한 번 먹어봐.(웃음)

| 천막생활 말고 힘드셨던일은 없으셨어요? _
물품 부족할 때 힘들지. 모자랄 까봐 하루하루 긴장돼. 그때마다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그럼 기막히게 채워주셔. 나한테 사고가 생기거나 아플 때도 급식소가 걱정되지.
오랫동안 급식소에서 식사하시던 분인데, 어느 날 안보여서 알아보면 돌아 가신 거야. 그럼 마음이 아프지. 한 분은 장례식 치러줄 가족이 없는 거야. 그래서 대신 장례를 치러 준적도 있어.

| 자원봉사자들은 보수 없이 급식소에 매일 나와서 일하시는 건가요? 쉽지 않은 일 같은데…. _
보수가 어디 있어? 여기 와서 점심 한 끼 먹는 게 보수라면 보수지. 전부 나랑 같이 새마을 부녀회 했던 사람들이야.

| 모두 나이가 많아 보이세요. _
한창 활동할 땐 다들 젊었지.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함께 늙어 가는 처지지만. 저 사람들이 있어서 이 일이 가능한 거지. 다들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바쁜 사람들인데 매일 나와. 누가 시켜서 하겠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못하는 거야. 고맙고 감사해.

|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_
다른 욕심은 없고, 앞으로 급식소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거지. 이다음에 내가 없어도 누군가 급식소를 계속 운영해줬으면 해.

| 소장님처럼 자비를 들여서 하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_ 그런 사람이 나오길 기도해야지. 노인들 굶지 않게.
 

정예훈 / 프리랜서 (사진 : 서근원)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