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신년벽두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새 12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낄 새 없이 가을이 되고 겨울로 치닫는다. 새해 첫날에는 계획도 많고 포부도 컸으나 이맘때면 무엇을 했나 싶어 마음이 착잡하다.

흐르는 시간을 보면 외고집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곁눈질 하는 일도 없이 앞으로만 나간다. 쏜 살 같은 세월이라지만 그보다 훨씬 빠르다. 화살은 재우는 과정이 필요하나 시간은 준비가 필요치 않다. 떨어진 화살은 주울 수가 있되 시간은 그럴 여지가 없다. 가끔 추억에 잠기는 일이 쏜 살을 줍는 것 같지만 그 동안에도 여전히 흘러간다. 해마다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의미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

올해는 묵은 해를 보내는 이례적인 감상보다는 시간의 속성과 묘리를 더듬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사는 것 자체가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니까. 일 분 전만큼 먼 시간은 없다지 않은가. 1분을 허비한 사람은 반드시 1분 때문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 유효 적절히 쓸 때는 프리미엄이 붙지만 허송세월한 시간은 무의미하다.

가끔 유수와 같다고도 하나 물은 겨울이면 얼어붙은 채 봄을 기다린다. 개울에서는 빨리 흐르다가도 냇물로 강으로 내려갈수록 완만해진다. 날씨에 따라 잔물결 아니면 파도로 부서진다. 그에 비해 시간은 춥다고 혹은 따스하다고 속도를 감안하지 않는다. 어수선한 북새통이든 태평성대 호시절이든 사시사철 흘러갈 뿐이다. 세월이 얼른 갔으면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일이 잘 풀려 지금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싶게 아쉬울 때도 제 갈 길만 고수한다.

저축을 하듯 뚝 떼어 뒀다가 쓰기도 어렵다. 물처럼, 방죽에 가뒀다가 가뭄에 대비하듯 한가로운 날의 시간을 바쁠 때 꺼내 써도 좋으련만 될 성 부른 게 아니다. 물은 수증기로 증발된 것 같아도 구름으로 엉기고 다시금 비로 쏟아지는데 시간은 흐르는 족족 사라진다. 오죽해서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객客이라 하겠는가.

시간의 흐름에는 에라가 없다. 물은 넘치면서 전답을 휩쓸고 해일로 역류할 때가 있지만 시간은 다만 여일하게 흐른다. 아울러 그 때문에 시간만큼 공평한 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천금으로 권력으로 살 수 없는 것 또한 두루두루 공평한 속성 그대로다. 부자라고 더 주거나 가난하다고 박절하게 덜어내지도 않는다.

변덕을 부리지 않는 대신 일각이 여삼추로 느껴지는 것도 그 특징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처럼 재미에 팔리면 세월 가는 줄도 모르지만 초긴장 상황에서는 1분 1초도 진력이 나게 길었다. 같은 시간인데도 상황에 따라 더디게 혹은 빨리 가는 것처럼 보인다. 쇠털같이 많은 날도 지루하지 않고 극히 짧은 순간도 가끔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수위 조절이 가능하고 탄력성이 유지되는 건 아닌지.

이렇게 생각할 동안도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물보다 쏜 살보다 속히 흘러갈 테고 그에 맞춰 살아야겠지만 그런 중에도 나름 여유는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만 나가는 시간이되 억류해 둔 채 적절한 운치를 누리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다. 사십년 전의 일도 추억이라는 구실로 손바닥에 올려놓는가 하면 까마득한 미래도 상상으로 곁에 둘 수 있다. 이따금 떠오르는 추억과 상상 때문에 힘든 날을 견디는 것도 그 변수다. 막무가내 달리는 시간을 보면 가당치 않으나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처럼 발은 시간 위를 달리면서 눈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 하늘이 푸르다면 아름답고 흐벅진 삶을 생각하면 되겠지. 가끔은 흐리고 바람 불어도 태풍이 지나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푸른 하늘이 다가온다. 얼마나 큰 소망인가. 일 분 일 초를 유효적절 활용하는 날들에 분명 활력소가 되리라. 똑같은 조건이지만 어떻게 쓰느냐로 결과가 달라진다. 사건도 많고 곡절도 많은 을미년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마음이 유독 수수롭다. 그 감회를 바탕으로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다가올 삶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시점에서……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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