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충북의 문화재

새해 벽두부터 질주해온 2015년 을미년도 통과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달력 한 장의 짧아진 꼬리를 남겨두고 쓸쓸함과 회환이 밀려오는 것도 세밑의 내면 풍경이지요.

외로울 때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 그 속에 자신을 던져놓으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회환도 이럴 땐 허허로운 길 위의 역사에 올려놓고 응시해보는 것도 인문人文의 색다른 여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2월을 꼭 닮은 문화재라면 충주 미륵리의 석조여래불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깊고 깊은 산속에서 천년을 홀로 미륵 세상을 꿈꾸고 있는, 마의태자의 눈물이 골골이 이야기로 찍힌 그 부처님 말입니다. 그 미륵의 땅에 들어 생성과 소멸의 시간을 가늠해 본다면 인간만사 새옹지마임을 체득하지 않을까요.

부처의 세상 미륵리는 휘돌아 이어지는 길을 통해 번뇌를 말끔히 떨치고 피안에 들라고 말을 건네옵니다. 길은 길로 이어질 뿐, 단박한 일상의 연속처럼 특별하지 않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비우고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끝자락에서 적요 속에 깃든 용화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첩첩 산중에 들어앉은 절 자리는 산자락 경사를 이용한 가람배치로 찾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우러러보도록 조성했습니다. 폐사지에 남은 건축물은 남을 것만 남아 간략한 모습입니다. 옛 사찰은 흔적으로 가늠해야 하지만, 온 사방을 압도하듯 우뚝 서 있는 부처님의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키가 큰 탓에 1개의 돌에 조각하지 못하고 6개 돌이 하나를 이루고 있고, 둥근 얼굴에 둥근 눈썹, 유난히 흰 얼굴과 원통형 몸통은 천년 풍상에도 아이같이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에 한발 한발 다가 갈수록 멀어지는 부처와 부처를 호위하듯 쌓은 ㄷ자 모양의 석축, 그리고 알듯 모를 듯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님의 표정은 외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천년 시간도 진리의 무늬를 지우지 못한 듯합니다.

석축 뒤로 돌아가 부처님과 나란히 시선을 맞춰봅니다. 정면을 바라보면 멀리 월악의 산자락이 접혀졌다 펼쳐지며 아련히 다가옵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을 향했던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의 전설이 겹쳐져선지, 부처님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무엇도 기약할 수 없던 마의태자의 절망은 다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되어 짙은 슬픔으로 전해집니다.

부처님을 등지고 걸어 나오면 고졸한 오층 석탑이 발길을 잡습니다. 부처님과 진리를 밝히기 위해 보낸 천년 세월이 탑 체에 서려 고고하게 빛납니다. 말없는 돌탑에서 세월이 빚은 견고함을 봅니다.
하늘재로 오릅니다. 부처의 세상과 맞닿은 부처의 길도 천 년 전에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교통로였습니다. 특히 문경과 충주를 잇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관로管路였습니다. 당시는 고개와 물길 따라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던 시대였으니 불교의 번성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한때를 구가했을 것입니다.

비록 시대의 변화와 속도에 밀려나면서 계립령보다는 조령(문경새재)이, 조령보다는 이화령이 도로의 역할이 높아졌지만, 이미 지문地文으로 부처의 세상을 새겨 놓은 미륵리이기에 이곳이 사바의 세계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천년의 길 위에 놓인 인간의 길도 어제와 오늘이 이와 같지 않을까, 고개가 수굿해집니다.

연지민 / 충청타임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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