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와 함께 하는 생각하는 독서 ‘우동 한 그릇’

며칠 전 충북도청에서 발행한 ‘함께하는 충북’ 12월호를 읽어보았다. 이번 호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황흥용 충북연탄은행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충북연탄은행은 지난 2008년 11월부터 지금까지 2천6백66가구에 53만 여장의 연탄을 배달하였다고 한다.
연탄 한 장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지피는 기사를 읽다보니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문득 생각났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짧지만 울림이 있는 시이다. 커피 한 잔 값이면 많게는 연탄 10장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연탄 한 장 값은 500원 정도로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연탄 한 장으로 누군가는 따뜻함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조용히 사랑의 연탄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과 연탄 값을 기부하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마음이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작은 사랑의 실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책이 있다. 바로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청조사 펴냄)이 그 것이다. 이 소설 역시 내용은 짧지만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해마다 섣달그믐날인 12월31일은 일본의 우동집들이 일 년 중 가장 바쁠 때다. 삿포르의 한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밤 10시가 지나 문을 닫을 무렵, 철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여자가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와서는 조심스럽게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식당 주인 내외는 귀찮을 법도 한데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초라한 행색을 보고는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몰래 더 넣어주었다. 마음 같아선 더 많이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부담스러워 안 올까봐 눈치 채지 못하게 반 덩어리만 살짝 더 넣어준 것이다.

식당 주인은 다음해, 또 그 다음해에도 이 곳을 찾은 세 모자(母子)에게 우동을 더 넣어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 후론 이들이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식당 주인은 늘 같은 시간에 이들이 앉았던 2번 식탁을 예약석으로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해 섣달그믐날 밤 세 모자(母子)는 드디어 이 곳을 찾아와 가장 사치스러운 우동 세 그릇을 주문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빚을 갚느라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매야했던 힘든 시절, 이들은 식당 주인 내외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삶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아들 쥰은, 한 그릇 밖에 시키지 못했는데도 식당을 나설 때 우동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 준 것이 자신에게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두 아들은 훗날 의사, 은행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전하기 위해 다시 북해정을 찾아온 것이다.
“저희는 십사 년 전 섣달그믐날 밤,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셋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동화 같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손님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표 나지 않게 우동 반 덩어리로 선행을 베푼 것은 물론, 세월이 흘러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면서도 2번 식탁만큼은 옛날 그대로의 것으로 남겨두고 ‘섣달그믐날 밤 10시 예약석’으로 비워둔 채 세 모자(母子)를 기다려온 식당 주인 내외의 세심한 배려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우동 한 그릇은 연탄 한 장처럼 값으로 치면 보잘 것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모자(母子)에겐 행복을 느끼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한,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맛있고,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진정한 나눔, 배려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가난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세 모자(母子)에게 우동 한 그릇이 아닌, 희망 한 그릇을 선사한 북해정 식당 주인처럼, 우리도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연인형 /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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