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와 함께 읽는 생각하는 독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최근 가수 아이유가 새로 발표한 미니앨범의 수록곡 ‘제제’가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의 주인공인 어린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 그것인데, 논란이 커지자 아이유는 그런 의도로 가사를 쓰지는 않았다면서 “가사 속 제제는 소설 내용의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 일로 인해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동녘 출판사)가 국내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브라질 작가 바스콘셀로스가 1968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초판이 나온 이후 최근까지 청소년 권장도서에 오를 만큼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엄마가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난한 가정, 그 곳에서 누나들, 형,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다섯 살 꼬마 제제. 제제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또래보다 조숙하지만 호기심도 많고 장난기도 많은 아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어린 제제는 가난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제제는 어린 나이에 선물하나 받지 못하며 슬픈 크리스마스를 보내야했고 용돈을 벌기 위해 구두통을 메고 거리를 다니면서 가난을 맛보아야했다. 하지만 가난보다 슬픈 것은 가족으로부터 당하는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은 제제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말썽을 피웠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로부터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러다 한 번은 뜻도 모른 채 누나한테 심한 욕을 해서, 한 번은 실직한 아버지가 불쌍해 보여 위로한다고 부른 노래가 하필이면 야한 가사여서 아버지로부터 심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왜 심하게 장난을 치면 안 되는지, 왜 욕을 하면 안 되는지, 잘 모를 나이인 제제에게 가족들은 잘못을 먼저 가르쳐주기보다는 때리기부터 하였다. 온 몸에 멍 자국이 있을 정도로 자주 얻어맞은 제제는 자신을 쓸모없는 아이, 나쁜 아이,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아이라고 자책을 하며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제제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새로 이사 간 집 뒷마당에 있는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와 포르투갈 사람인 뽀르뚜가 아저씨가 그들이다.
키가 작고 조숙한 점이 제제와 닮아서일까?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는 제제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다. 제제는 밍기뉴에게 매일매일 있었던 일들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자동차 뒤에 올라타려는 장난을 치다가 만난 뽀르뚜가 아저씨도 비밀이야기까지 나누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낚시도 다니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뽀르뚜가와 함께 있으면 제제는 늘 행복했다.

“뽀르뚜가! 난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정하게 대해주고 제제를 응원해주던 뽀르뚜가 아저씨.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자동차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제제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큰 충격과 슬픔을 맛보아야했다. 제제가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뽀르뚜가 아저씨, 그리고 언젠가는 늙어서 잘려나갈 라임오렌지나무 등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이별의 슬픔을 견뎌내면서 제제는 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마흔여덟 살이 된 제제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풀어놓았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철이 들고 나이 들어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다섯 살 어린 제제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 저미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어른들의 잘못인 것 같아서……. 그래서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년대의 우리나라 시골 모습과도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 구슬, 딱지 등을 가지고 노는 놀이문화도 그렇고, 크리스마스 선물은커녕 운동화살 돈이 없어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제제처럼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야했던 아이들의 모습도 그렇다.

이처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뽀르뚜가 아저씨와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제제처럼 가난과 폭력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우리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에게 뽀르뚜가 아저씨처럼 손을 내밀어주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겠다. 그들이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연 인 형 /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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