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직원여행을 천리포수목원과 수덕사로 다녀온 후 늦은 밤이지만 서둘러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이틀 전부터 어머니가 아프시어 조바심 속에 여행을 다녀온 터이다.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동생이 “엄마가 금방 잠드셨다”고 쉿하며 나를 맞이한다. 편히 누워계시지 않고 농 쪽에 몸을 기대고 목이 불편해 보여 살짝 어머니를 안아 바로 누이려는 순간 아랫도리에서 홍수가 터져 나온다. 이불에 순식간 누런 물결지도가 그려졌고 세균으로 곰삭은 설사가 기다렸다가 쏟아진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엄마가 의식이 전혀 없고 목에서는 가르륵 가르륵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러다 돌아가시는 게 아닌가?’ 깔아놓은 요는 황급히 제쳐두고 함께 온 남편이 119에 연락하여 다행히 5분 내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내가 자원 동승하여 ㅎ병원으로 향했다. 남자 대원이 혈압과 맥박을 재었는데 정상이었으나 높은 고열로 어머니가 의식을 잃은 듯하였다. 응급실에서 엑스레이, 혈액, 소변검사를 마치고 새벽 1시가 되어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빨리 열만 내리면 싶은데 위와 복부 CT를 확인하니 가스가 차고 염증도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상한 치킨과 굴도 드시고 이틀이 지나도록 방치했으니 몸 내부가 이곳저곳 망가진 것이다. 엄마를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고 눈도 뜨시지 않는다.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고열을 잡기 위한 해열제 투여와 기타 주사액만이 ‘똑똑’ 무심히 떨어져 내린다.

사경을 헤매는 엄마 곁
조용한 병실
동생들이 보고 싶다

엄마의 호흡과 맥박이
숨고르기를 하는 지금
어쩌면 엄마와 영원한 이별

세월 속에 잃어버린 꼬까신과 낡아진 웨딩드레스
우리도 엄마처럼 늙어가고 있다.
우리도 이젠 고아가 되는 게 아닌가?

태어남은 혼자이다
아픔도 혼자이다
죽음은 더더욱 멀고 깊은 곳으로
혼자이다.

엄마가 옆에 있음에도 그냥 동생들이 보고 싶은 것은 왜일까? 갑작스런 입원소식을 듣고 내일 예서제서 모여들 동생들 생각에 눈물이 그렁인다. 거의 날밤을 보내고 아침이 돼도 계속 의식이 없으시다. 새벽 일찍 병실 문을 열고 오라버니가 오셨다. 외아들 오라버니의 근심은 더욱 깊을테지, 별 것 아니라 하시어 미루었는데 진즉 병원으로 모실 걸 하는 후회가 발걸음 하나하나에 묻어나고 있다.

어느새 점심이 다가오는 시간 병실 밖으로 공터가 눈에 들어온다. 각종 폐기물과 공병 등 쓰레기가 제멋대로 놓여져 있다. ‘사람은 죽으면 영영 볼 수 없는 땅 속으로 가야하는데 그래도 저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줄지어 모여 있구나’ 그 자체가 부럽고 어여쁨을 느낀 건 일생 처음이다. 내년이면 어머니 연세 아흔! 아프실 때도 되었건만 이대로 이별이란 설정하기 어렵다.

간절함 때문인지 살금 침대 곁으로 가보니 어머니가 눈을 뜨셨다. 대뜸
“학교 안가? 사위는 어디 갔어?” 천금 같은 한마디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것일까?
“엄마 나 보여?”
“으응, 교장 딸이지”
왈칵 눈물이 솟는다.

죽음의 길에서 돌아선 어머니! 여기 저기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핸드폰을 연다. 우연히 내 손길을 붙잡는 지우지 않고 두던 제자의 어머니 연락처! 특수학교에 재직할 때 만난 모자 두 사람, 어머니는 건강하고 착하고 얼굴도 고운데 아들은 지체장애로 태어나 삼백육십오일 휠체어를 밀고 끌고 다녀야했다. 거기다가 말 한마디 할 수 없어 말 걸면 입을 함박만하게 벌리고 착하게 웃던 제자였다. 기어다닐 수조차 없는 심한 경직과 팔다리가 점점 가늘어져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다. 나는 울었다. 가끔 외로워질 때 제자를 생각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소년을 별 대신 가슴에 안는다. 아직 이별을 하지 않은 것이다.

카돌릭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여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늘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 사랑이 아직 식지 않은 때문이다. 이 땅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 바치신 김대통령님이 영면하여 우리를 두고 하늘로 가셨다. 사랑하는 어머니 대신 가신 게 아닐까? 어린 제자를 보내고 나라의 어른을 보내드리고 어머니는 아직 곁에 계시다. 언젠가는 뜻밖의 이별이 있는 한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은 어머니, 당신입니다.

박 종 순 / 보은 산외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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