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괴산 세계 유기농엑스포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며

싱싱한 포기상추를 보는 순간, 뜨거운 쌀밥에 할머니가 보내 준 5월의 고운빛깔 고추장을 얹어 한 잎 쏙하고 먹는 상상을 하며 두 손 가득 사버렸다. 기분 좋게 사들고 온 상추를 꽉 찬 냉장고에 넣었다간, 그 먹음직스런 잎사귀가 구겨져버릴 것만 같았다. 잠깐 고민하던 난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지만, 냉장고에 넣지 못하는 상추를 넓은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포기상추의 밑동만 닿게 하여, 담가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담아 맛난 고추장에 파와 마늘을 곱게 다져 넣고, 참기름과 꿀을 살짝 넣었다. 군침이 도는 것을 참으며, 바가지에 담가두었던 상추를 보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밥과 고추장을 상에 차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 싱싱했던 상추가 푹 꺼져 시들어져 있었다. 비록 뿌리가 잘리긴 했지만 밑동이 엄연히 있었고, 그것을 물에 담가 놓았는데...... .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실망감을 뒤로하고, 시들은 상추가 아까워 물에 푹 담가 놓고, 결국 냉장고에 꼭꼭 싸 넣었던 상추를 다시 씻어 먹었다.
조금 지체되었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싱싱함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이름 붙이기 충분 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려 부엌으로 나간 내 눈에, 담가 놓은 시들었던 상추가 들어왔다. “그 짧은 시간에 시들어 버리다니!” 설거지를 하려던 손길은 멈추고 상추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뿌리를 잃으면, 아무리 잠깐이라도 금방 시들어 버리는 구나!”

그렇다면 아무리 대단하고, 엄청난 것이라도 뿌리를 잃으면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인가?

나는 문득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100년 걸린 산업화를 그 반도 안 되는 시간에 달성해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사업의 뿌리가 되는 1차 산업인 우리 농업의 현실 말이다. 영세한 농가, 농업인구 감소, 농업인 중 청장년비율 감소, 수입농산물의 공세에 밀려버리는 가격경쟁력 농업을 천시하는 우리들의 편견, 환경오염 등이다.

아무리 잘나도 이 세상에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먹거리를 만드는 농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삶의 뿌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지금 날카로운 칼날이 코앞에 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가?

그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원한 냇가에 주먹만 한 사과를 슬슬 씻어 먹어도 아무 탈 없던 그 시절, 비록 짧고 연약해 보이지만 건강하게 재배되어 밭에서 금방 뽑아 반찬을 만들어도 맛나기만 했던, 몇 번을 농사지어도 토양이 건강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농약 없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긴 수확의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와 적은양이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만족하는 ‘유기농 재배’가 그것이다. 유기농으로 재배된 농산물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환경을 지키며, 농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시키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우리가 결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습과 후손에게 물려 줄 이 땅의 문화를 우리가 결정하자.

최근에 이러한 생각을 함께하는 움직임이 모여 2015년 세계유기농엑스포가 괴산에서 9월 18일 개막하여 10월 11일까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유기농업학회(ISOFAR)는 세계유기농엑스포를 개최하기로 했고, 충북도와 괴산군이 응모하여 엑스포개최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것이다.

행사기간 동안 108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했고, 20개국에서 바이어 1140명이 찾아 1억7700만달러(약 2130억원)의 상담실적을 냈으며, 현장에서 268만달러의 수출계약이 이루어졌다. 실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맞추어 2012년 괴산군은 전국 최초로 유기농업군, 2013년 충북은 유기농특화도를 선포하여, 일회성 행사가 아닌 유기농업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뿌리 깊은 나무에 풍성하게 열매가 열리듯 우리 고향 충북이 아름답고 욕심 없는 유기농재배의 꿈이 되어 대한민국 농업 전체의 희망으로 발전되리라 믿는다.

정혜련 /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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