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병원학교 이서영 교사

혈액암이라 불리는 백혈병, 뇌종양, 선천성 희귀질환인 고면역글로블린 E증후군(고 IgE)…. 병명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난치성 질환들. 어른도 버티기 힘든 병마와 오랜 시간을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늘 이런 고민 속에 아픔을 딛고 환하게 웃는 병원학교 아이들 곁을 지키고 있는 이서영 선생(35).

충북대병원학교 개교 이래 8년 간 환아들과 함께 해 온 이 선생은 그냥 병원학교 교사가 아니라 아픈 자녀와 그 부모들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아픈 친구들의 선생님
공주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심리치료를 전공한 이 선생은 2006년 충북 옥천에서 정식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청주로 발령이 나면서 당시 개교를 앞 둔 충북대병원학교로 근무지가 정해진 것이다.

병원학교란 장기입원이나 통원치료 등으로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건강장애학생들의 교육 지원을 위해 병원 내에 만들어진 학교다.
정식 교직 생활 2년 만에 일반 특수학급보다 어렵다는 병원학교 교사가 된 이 선생의 첫 발걸음은 무거웠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엔 분명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도 있을 터. 보통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맡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아픈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이 됐죠. 부모들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처음엔 옷도 밝은 색만 입고 다녔어요. 항상 밝은 표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부담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학생은 물론 부모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됐다.
“몸은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주면 되지만 아프고 상한 마음은 치료받을 곳이 없더라고요. 그들의 힘들고 아픈 마음에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지금은 서로 기대며 의지하는 관계가 됐어요. 오히려 그들 덕에 제 마음의 크기도 더 자란 것 같아요.”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아픔의 시간을 함께 견뎌 주면서 이 선생은 어느새 아이들과 부모들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가 됐다.
“엄마들이 차마 아이 앞에서는 울지 못하니까 여기(병원학교 교실) 와서 한참을 우시다 가곤 해요. 그러다 보니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됐죠.”

힘든 이별도 감내해야
건강을 회복하고 학교에 무사히 복귀하는 친구들의 환한 미소는 고통스런 시간을 함께 보냈던 이 선생에게도 기쁨이다. 그러나 병원학교엔 기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힘든 이별의 순간도 감내해야 한다.

“5년을 함께 했던 아이였어요. 어려서부터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서 또래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아본 적도 없었던 친구였죠. 저보다 오래 병원에 있었던 지라 병원 사정도 잘 알아서 제가 보조 교사라고 부를 만큼 든든한 친구였는데…. 한 번은 눈이 오는 날 휠체어에 태워 병원 마당에 데려다 준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한 번도 눈을 직접 만져 보지 못했다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 때 그 웃음이 아직도 선해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 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못해 준 게 많아서 미안함이 너무 크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 선생. 일 년 반 동안 죽은 친구가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치우지 못하고 한동안 마음속에 이별의 상처를 안고 살았다고 한다.

“어렵게 병마와 싸워 대학까지 갔는데 나중에 재발해서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던 학생도 있었어요.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 때 학생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서 아이가 저를 보고 싶어 한다며 부르더라고요.”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 선생을 보면서 병원학교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이 되는 사람들
“병원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심리적인 것이었어요. 일은 배우면서 하면 되는데, 심적인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아픈 아이와 엄마들, 특수한 환경…. 정말 외롭고 힘들었어요.”
학교가 아닌 병원 안에서 혼자 근무해야 하는 것도 외로운데, 그 대상이 몸과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어서 더 힘겨웠을 듯하다.

도내에 있는 유일한 병원학교 교사이다 보니 일반학교 특수교사들과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에게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유일한 친구며 동료였던 게다.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8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병원 교수님들과 간호사님들은 아이들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주시고, 교장 선생님도 병원학교 일이라면 적극 지원해주세요. 저희 교감 선생님은 아침에 꿀물도 타주셔요.”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학생들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다양하잖아요.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려면 제가 더 많이 배워야지요. 그래야 한 가지라도 나눠줄 수 있지 않겠어요?”

이 선생은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틈만 나면 운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의 표현대로 ‘이것저것 써 먹을 수 있는 것’을 배우러 다닌다. 뿐만 아니라 방학 땐 의료봉사단과 함께 해외 봉사 활동까지 한다.
“의료인은 아니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그의 삶의 연장선이다. 지난 여름방학엔 말레이시아에 교육 봉사를 다녀왔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 선생. 그는 이번 겨울 방학에도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떠날 계획이다.

정예훈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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