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꽃을 기다리며 6월을 보낸 후 다래를 기다리며 8월을 맞이했다.
아이들마다 화분에 하나씩 목화씨를 심었는데 하나도 죽지 않고 싹이 트고 물과 바람을 먹고 씩씩하게 자라났다. 키가 30센티 정도 커지더니 어느 새 꽃망울을 달았다.

목화꽃은 무궁화꽃 크기에 색깔이 황백색이어서 순결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담고 귀하게 피어났다. 연못속을 잠시 떠나 땅에 피어난 연꽃에 비할까? 다섯 장의 꽃잎이 서로 어울려 곱게 자란 공주의 모습을 넘어 왕후의 자태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되었다. 꽃이 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저기 꽃의 색깔이 분홍빛으로 바뀌는 것이다. 분명 피어났을 때는 황백색이었는데 마치 새색시가 볼연지를 엷게 칠한 듯 들여다볼수록 내 마음에 설렘도 일었다. 전문가에게 알아보니 꽃이 떨어지기 직전에는 더욱 붉은 빛이 감도는 분홍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목화꽃의 대단한 신비이다.

염려가 되는 것은 꽃이 지면서 하얀 목화솜이 총총히 깃들 열매가 과연 달릴까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기특하게도 꽃이 지면서 녹색의 열매가 이곳저곳에서 달리는데 끝이 뾰족하면서 달걀모양을 지어가는 것이다. 볼수록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어린 시절 군것질감이 없던 그 때 목화밭을 지나다 열매를 따서 녹색 껍질을 입으로 떼어내고 하얀 솜을 잘근잘근 씹어 다래의 물기를 먹던 일이 생생하다.

아이들 마다 이름표를 해서 꽂아주고 화분을 한 줄로 열을 지어 놓아주었는데 화분마다 대 여섯 개 이상의 다래열매가 달려 마음을 놓았다. 문제가 없지 않았다. 무슨 벌레인지 잎을 갉아 먹을 뿐 아니라 제 몸으로 잎을 도르르 말아 버려 목화 줄기, 잎 등 전체가 몸살을 앓는 상황이 되었다. 지켜보던 주무관이 농약을 뿌려 주자고 제안했는데 본래 유기농으로 키우려 한 것이라 약을 치지 않고 손으로 벌레를 잡아주었다. 사람이 배출하는 유기물을 식물의 거름으로 그것을 먹고 자란 식물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환형 유기농을 실험해보는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화꽃보다 아름답고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나는 그들이 유기농으로 자라고 있는 목화처럼 대량생산 화합물에 지치지 않고 각자의 특색과 순수를 지닌 채 이웃과 함께 하는 안전한 생명으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교사 뒤편 텃밭에 ‘꿈이 자라는 생명터’를 마련하고 아이들 스스로 피망,오이, 가지, 옥수수, 강낭콩, 고추, 방울 토마토, 긴 호박 등을 심어 가꾸게 하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와 돌봄으로 잘 가꾸고 있다. 아이들이 첫 수확이라면서 오이 비슷한 긴 호박과 방울토마토를 담임선생님과 나에게 따가지고 와서 정말 흐뭇했다. 냄새도 맡아보며 먹어보니 달콤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무덥던 여름도 꼬리를 내리고 9월이 되었다. 다래가 여기저기 두터운 껍질을 열고 하얀 목화솜을 내밀었다. 마치 산타가 솜사탕을 가져다 붙여놓은 것처럼 목화와 함께 아이들은 보람차게 자랐고 시간은 고맙게도 선물을 내놓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없다’는 진실을 몸으로 보여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올해엔 ‘찬미받으소서’라는 생태회칙을 반포하여 종교인이나 비종교인들 모두에게 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즉 ‘자연을 우리 자신과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거나 우리가 살아가는 배경으로만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생명의 원천인 자연에게 따뜻한 시선을 열어준 것이다. 과연 흔들리고 있는 인류세계의 지도자로서 무너져가는 지구촌을 일으켜 안으려는 앞서가는 생각에 안도감을 얻고 머리가 숙여진다.

9월 18일부터 청풍명월 충북도 괴산에서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를 열게 된 것은 여러면에서 의미가 깊다. 어쩌면 점차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땅과 지구와 자연을 아프게 여긴 신이 마련해준 축복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괴산 유기농 엑스포는 우리 삶의 원천인 착한 자연으로의 발걸음의 전환이요 아주 작은 말없는 풀들을 어루만져주는 진정한 사람으로의 회복이다.

아이들 발걸음과 웃음소리와 산바람소리, 구름의 위로, 산새들의 응원을 듣고 자라는 우리학교 목화는 벌써 사람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하여 온 몸을 모아 하얀솜을 준비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헌신하는 고마운 이웃이다. 이렇듯 생명의 삶터에서는 생태의 농장에서는 사람의 생각이 작은 풀 하나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의 빛깔 그의 향기까지도.

유기농이 비로소 사람을 만나는 생태적인 삶, 그 귀한 시간이 이제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박종순 / 보은 산외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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