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번은 거치게 되는 청소년기, 그것은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과정이지만, 그 시기만큼 고민 많고 예민한 심리적 격동기가 또 있을까. 주인공이 만약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해있거나 남들보다 좀 더 심약한 사람라면 그 시기가 더욱 잔인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14살 소년 덩컨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맺어 가는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축 늘어진 두 어깨선, 희미한 눈빛 역시 자신 없어 보이며, 걸음걸이도 의기소침해 보인다. 부모님의 이혼문제 역시 그에게 불리한 환경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점은 어쩌면 새 아빠가 될지도 모르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10점 만점에 3점짜리 형편없는 ‘찌질이’로 취급한다는 것과 엄마의 정성과 관심이 온통 남자친구에게 집중되어 엄마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자신감이 부족해 적극적이지 않을 뿐인데, 그 남자는 믿음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사회 부적응아처럼 취급을 하며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직설적인 충고와 핀잔으로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덩컨의 엄마는 남자친구와 서로 엇나가는 아들의 눈치를 보는 듯하지만, 여성으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현실적 부담감 때문인지 아들의 의견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엄마와 덩컨, 엄마의 남자 친구와 그의 딸, 예비가족들의 여름휴가는 덩컨에겐 정말 유쾌하지 않은 껍데기 이벤트일 뿐이다.
날 믿어주길 바래
덩컨과 오웬의 만남은 뜻하지 않은 유쾌한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또래집단의 노골적인 무시를 참아내기 위해 그가 찾아낸 유일한 탈출구는 자전거타기였고, 주인 없는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워터 파크에 도착하게 된다. 가족들과 피서지를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태양빛과 파도를 즐기기 위해 탁 트인 바다로 달려 나갈 때 던컨은 울타리가 쳐진 워터 파크로 향하고, 그곳에서 오웬을 만난다.
일정한 룰이 없어 보이는 자유분방한 태도, 매사에 싱거운 농담을 일삼는 그는 마음 붙일 곳 없는 덩컨의 사정을 아는 듯 그에게 수영장 스텝 자리를 제안한다. 오웬은 양육권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무책임한 아빠,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엄마의 남자친구와는 달리 덩컨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고 스스로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드디어 끈끈한 인간적인 유대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덩컨, 그게 바로 내 이름이야!
외톨이처럼 겉돌던 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아니, 눈에 띄게 하루하루 성장해나간다. 생각지도 않은 수영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감을 체험한다. 이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어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원칙과 규율만을 고집하는 엄마의 남자친구에게도 소극적이나마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내가 서야 할 자리, 가야 할 길을 찾아나가려는 용기가 충만해졌고, 이제 더 이상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하던 던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 여름의 태양빛과 같은 에너지와 열정과 용기, 새롭게 재충전된 자신감만이 그의 미소 속에 그득하다. 더 이상 그는 3점짜리가 아니다.
이종희 /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