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계절을 기다림...

유독 비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비의 계절은 우중충하고 지루한 분위기에 무기력증까지 동반하기 때문에 그다지 유쾌한 시간이 아니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맘껏 활개 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빼앗아, 투명 줄무늬 공간에 갇혀버린 고독감마저 맛보게 하는 개운치 않은 기간이다. 적어도 영화 <지금, 만나러갑니다>에서 그려낸 비의 계절이 전하는 또 다른 감성에 빠져들기 전까지, 그 계절은 여름만의 독특한 매력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석연치 않은 현상이란 의견에 이의가 없었다.

산자락을 타고 넘는 안개구름, 소강상태로 접어든 습기 머금은 공간의 신선함, 현실과 가상이란 시간의 사슬을 이어주는 빗소리의 경쾌함, 화면 곳곳에 피어나는 여름의 향기, 수묵화에서나 엿볼 수 있는 여백의 미까지, 영화는 비의 계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자연현상을 운치 있게 담아내고 있고, 각 장면들은 빗소리의 정겨움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에 강한 호기심을 더하게 한다.

타쿠미와 유우지에게 비의 계절은 특별했다. 세상을 떠나면서 1년 후 비의 계절에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한 미요를 기다리는 두 남자, 그들에게 비 소식은 간절한 바람이며 끝이 어찌될지 모르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타쿠미는 생전에 아내의 말이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6살 아들 유우지에게 믿음을 심어준다. 얼마 후 그들의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순간 비의 계절은 생기 넘치는 색다른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해바라기를 닮은 사랑...

두 남자 앞에 나타난 미요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 타쿠미는 미요에게 말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던 소극적인 짝사랑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설픈 첫 만남, 뜻밖의 병 때문에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일,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이끌려 그녀를 찾아간 일 등 아련한 추억들을 그녀에게 들려준다. 비의 계절이 깊어갈수록 남편과 어린 아들의 보살핌과 배려, 따뜻한 사랑 안에서 미요가 느꼈던 낯설고 어색한 감정은 어느새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 속에 녹아든다.

그러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퍼즐 조각이 되어 행복한 그림 한 장이 완성될 즈음, 미요는 아들이 찾아낸 타임머신 안에 보관되어 있던 자신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비의 계절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져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지금, 만나러갑니다...

모든 것은 미요의 선택으로 이미 예정된 시간들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혼수상태에서 미래의 일들을 보게 된 미요, 20살 그녀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찾아간 것은 29살 타쿠미와 그녀가 앞으로 만나게 될 미래의 아들이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그녀가 짧은 삶을 살다가 가족을 떠난다는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꽃밭 중심에 서서 그녀는 그들에게 운명적으로 기적처럼 펼쳐질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이종희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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