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마치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의 몸속에는 심장, 폐, 간 등과 같은 기능들이 있다. 또한 얼굴을 구성하는 눈, 코, 입, 귀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공통적인 기능을 갖되, 각기 다른 생김새와 성격의 차이에서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개성이 뚜렷할 때 호감을 갖게 된다.

이따금 마을을 거닐다 보면 우연히 마주친 집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언덕에서 바라본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우러진 기와지붕, 처마의 표정이 살갑게 다가온다. 문(門)의 표정은 멀리서 반갑다는 듯 손짓을 한다.

주택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집의 앞모습을 사람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문(門)은 분명 입이 아닌가. 이야기하고 표정이 있어 입구(入口)라고 하는가 보다.

문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표정들은 건물과 사람을 소통시켜 주고, 사람은 집을 느끼고 집은 사람을 품어 준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가들은 문의 위치나 크기 또는 모양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문은 그 집의 ‘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던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건축에서 문을 설치하는 공정(工程)은 마무리 공정중의 하나로 최종적으로 아울러 집의 조화를 이룬다.

언젠가부터 거리의 집들에서 문의 정취가 사라진 듯하다. 아기자기한 문(門)의 표정들은 보이지 않고,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도 시들해 졌다. 거리의 건물들은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건물의 외피가 투명해지고 가벼워지면서, 인간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모습에서 문으로부터의 다양한 손짓이 사라진 것 같다.

집은 휴식, 단란의 육체적, 정신적인 욕구의 주거에서 생산, 거래의 장소로 더 많이 활용된 이유도 있겠지만, 집에서의 ‘안과 밖’의 경계는 허물어져 버렸다. 문이 본래의 기능보다는 보안이나 방풍의 역할에 비중을 둘 따름이지, 더 이상 표정이 있는 낭만적 상징성은 가치를 잃었다. 소통하고 애기하는 옛 모습의 문을 기대할 수 없어 안타깝다. 마치 나신을 드러낸 연예인에게서 신비로움의 상실처럼, 무표정의 건축물들만이 거리를 메우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다.

일부소수이긴 하지만 건축을 장사속이나, 사용하는 사람들의 장소 불감증으로 속수무책일 때 마음이 아려온다.

마을의 표정, 도시의 건축을 바라보며 집들이 예(禮)로서 객(客)을 맞이하는 사람냄새 나는 건축의 표정을 보고 싶다.

공학박사․충청대학교 겸임교수 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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