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심히 아플 때 누구보다도 엄마가 보고 싶고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났고 우리 각자는 엄마의 모든 것이었기에.

조건없이 자식이라면 몸이 아파도 뼈를 갈아서라도 무한 사랑을 쏟아주시던 어머니! 그런데 늘 위안이던 어머니도 89세 내일이면 구십이다. 모진 풍파와 가난을 온 몸으로 이겨내시고 90가까이 이끌고 오신지라 몇 번은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전화라도 하고 싶은데 아픈 내 목소리를 듣고 더 걱정하실까 어머니 계신 쪽을 힘없이 바라본다. 집 안팎으로 놀라운 일이 겹쳐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내가 가여웠는지 남편이 틈을 내어 어머니를 뵙고 왔다고 근황을 전해준다.

어머니도 노화 현상과 심한 감기로 식은 땀을 쏟으시며 바깥 출입도 제대로 못하시는 터 내심 걱정이었는데 가까운 데 문을 연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 드시고 기운을 차리셨다 한다.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한숨 돌려 전화를 드리니 목소리가 경쾌하고 힘이 있다. 나도 덩달아 힘을 얻는다.

주일을 기다려 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어머니를 뵈러 친가로 향한다. 와중에도 딸이 온다하니 쑥을 뜯어 쑥버무리를 해 놓으셨다. 엄마와 나는 식성이 비슷하여 맛있다 하며 밥보다 맛있게 먹는다. 복 많은 우리 어머니! 그 연세에 교회 가시어 예배보시고 성경 읽고 찬송부르시고 내가 그 나이 되면 바깥 출입도 어려울텐데 뿐만 아니라 라디오를 즐겨 들으시어 집권당과 야당의 정치권 소식 등 뉴스를 듣고 시사초점에 궁금증도 많으시다. 대략 알아듣기 쉽게 알려드리며 등을 토닥여 드리면 그제야 수긍하신다. 판단력이 놀라울 뿐이다

“육거리 가서 이것저것 살 거 있는데 시간 되니?”
얼마나 반가운 제안인지 남편과 나는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몇 번이나 어디 가시자하면 기운 없어 못간다하셨는데 당신 스스로 가자하니 다시 살아나셨다는 징조이다. 엄마는 손꼽아 기다려온 듯 살 것을 중얼 대신다.
‘빤쯔, 장갑, 볶은 깨, 표고버섯....’

육거리라는 전통시장에 이르자 살아 숨 쉬는 많은 사람들 옷깃으로 생의 희열이 뿜어나고 의식주를 연명할 무언가를 팔고 사는 치열한 생의 현장에 정신이 번쩍든다. 언제 알아두셨는지 단골집으로 우리 내외를 데리고 간다. 주인 아줌마는 아파서 못나오고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 우리 가족을 맞이한다. 문제는 엄마의 팬티 싸이즈가 혼동되어 100인가 105인가 엄마가 곰곰 재고 계시다. 105가 클 것 같다하니 아저씨는 그래도 작은 것보다 큰 게 좋다고 한다. 이젠 정말 어머니도 늙긴하셨나보다. 내가 팬티 사이즈를 알아두어야하지 않을까? 순간 가슴이 서늘해오기도 한다. 두터운 겨울 장갑 대신 보라색 장갑도 샀다. 엄마의 허리는 무심한 세월 따라 쫌 굽으셨지만 표정은 소녀처럼 웃고 만족스럽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렇게 시장을 다녀가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일이 사람의 일일진대 오늘 어머니는 우리 내외에게 행복과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가슴에 껴안게 해 주셨다. 최고의 평안이다

며칠 전 친가 오라버니와 통화하면서 “오라버니! 우리는 부모 복은 탔어요. 엄마 도로 살아나시어 손자 잘 먹는다고 두부 사시고 요양병원으로 안모시니다행이지요. 아버지도 겨우 6개월 앓으시고 하늘로 가셨잖아요”

남편이 운전을 하고 뒷자리에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벚꽃이 곱고 환하게 피어났다. 엄마도 그걸 보셨는지 ‘예쁘다’ 하신다. 낼이면 아흔에 이르는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살아서 앉아 있다. 숭고하고도 위대한 기적이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고 이 땅에 낳으셨으며 피와 땀으로 길러 주셨다. 하느님은 작은 것에서 큰 일까지 바라고 또 바라고 칭얼대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깊은 사랑과 무한한 자비 그를 대신하기 위하여 어머니라는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아플 때 떠오르는 사람은 하느님과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기운을 얻어 기쁘셨는지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 손을 꼭 잡고 기도 올린다.
“주님! 우리 딸 놀래서 많이 아팠답니다. 얼른 건강 주시고 직장생활 잘 하게 도와주세요. 오늘 사위하고 딸하고 시장에가 이것저것 사니 감사해유. 내 물건 사주느라 돈도 많이 쓰고...... 자식들 걱정 안하게 잘 때 천사를 보내시어 하늘로 가게 해 주셔요. ”

어머니는 다 도착했음에도 눈을 감은 채 기도를 그치지 않으신다.

5월!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 없이 사람이 된 자는 없다. 어머니를 찾아서 한걸음 한걸음 사랑과 희망을 엮는 사람, 그는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보은 산외초등학교 교장 박 종 순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