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에 싸인 꽃

산자락이 온 통 사원이다. 한나절 시들하던 햇살이 반짝 허리를 굽혔다 가고 누워있던 낙엽도 일어나 합장한다, 언제 어느 순간 이곳에 사원을 들였는지. 딱따구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 여운이 깊다.

차가 정지한 곳은 청주 근교 ‘앉은부채’ 자생지이다. 민틋한 산자락으로 발을 들이자 온 산이 화촉동방華燭洞房이다.

나발을 닮은 꽃, 座佛 같기도 한. 앉은부채‘는 꽃모양이 부처가 앉아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잎 모양이 부채를 펼쳐 놓은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실제 꽃을 보면 '앉은부채'보다는 '앉은부처'가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부처의 머리처럼 생긴 꽃차례가 그렇고, 광배(光背)처럼 생긴 꽃덮개가 그렇다.

앉은부채는 꽃이 피는 동안 꽃을 감싸고 있는 포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이때 포 내부의 온도는 바깥보다 섭씨 5도 정도 높다고 한다. 꽃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이 고약한 냄새로 파리나 곤충을 아름다운 꽃집으로 초대하고, 초대된 곤충은 이들의 수분을 돕게 된다. 꽃집 아래에서는 찬 공기를 빨아들이고, 위로는 따뜻한 공기를 내보내며 꽃집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한다. 자연의 섭리 앞에 그저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꼬챙이처럼 굳은 배를 잡고 끙끙대는 고라니 토끼 도려낸 상처처럼 알싸한 기억, 싱싱한 울음 그 울음 쏟아내게 하려고 눈 속에 돋아난 부처 달디 단 공양이다.

앉은부채는 천남성과의 맹독성 식물로 수산염칼슘 결정을 지니고 있어 잘못 먹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은 꼬챙이처럼 굳은 배를 잡고 끙끙대며 독초를 찾아 헤멘다. 겨우내 배설되지 않은 찌꺼기들이 뱃속에 딱딱하게 굳어 있게 마련이고, 이를 배설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 앉은부채는 그들에게 달디 단 공양이다. 앉은부채를 뜯어 먹은 동물들은 극심한 통증과 염증을 일으켜 설사를 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장이 깨끗해 질 뿐 아니라 꼬인 창자도 뚫리게 된다. 때로는 너무 많이 먹어 종종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로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득이 되기도 하면서 얽히고 설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자연이다. 더불어 살기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각자 알아서 살기로 온 세상이 타협을 본 듯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남의 일에 간섭 않고 간섭 받기도 싫다는 식이다. 아침에 하루가 시작 되 듯, 3월은 세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달이다. 햇살이 어떤 일을 하는지가 확연하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자연이 더욱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신준수(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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