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기 사진작가,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펴내

“모시옷으로 차려입은 방골마을 할머니가 큰 손녀딸 시집보낼 때 쓰려고 지붕 위에 박을 정성들여 가꾸고 있었다. 바가지는 마을 샘터에서 물을 퍼 담고, 쌀 씻으며 돌을 골라내고, 간장을 뜨고, 곡식을 퍼 담는 것에 요긴하게 사용됐다. 초가지붕엔 탐스러운 박이 주렁주렁 열리고 멍석 위에 펴논 빨간 고추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 주던 고행의 풍성한 가을이 좋았다.”

지난 1967년 진천군 덕산면에서 김운기씨가 찍은 사진의 설명이다. ‘초가 지붕에 박이 주렁주렁’이란 제목의 이 사진은 우리네 옛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정겹다.

김운기씨의 다섯 번째 사진집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은 충청일보 사진기자로 36년간 활동하던 시절 촬영한 사진과 또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중심으로 지난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들의 모습, 땅을 가꿔 온 농부들, 티 없이 밝게 자라며 뛰어놀던 아이들, 그리고 대청, 충주댐 건설로 고향을 물속에 버려두고 떠나면서 눈물로 애끓어 통곡하던 모습도 담겨져 있다.

“젊은 시절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충북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지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안타까운 일도 있었고, 감동적인 일도 있었고……. 순간순간이 다 어제 일처럼 떠오른답니다. 이 사진집은 그 때를 하나하나 회상하며 만든 제 기억의 보물 창고죠.”

김운기씨에게 고향은 남다르다.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월남해 충북 청주에서 지금까지 자라고 살고 있다.
“제 고향은 원래 이북이에요.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났는데 해방 이후에 월남해서 충북 청주에서 새 터전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 통일이 되어도 고향에 갈 수가 없어요. 비무장지대로 흡수되면서 마을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충북이라는 곳이 저에겐 제2의 고향이도 또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인거죠.”

그래서 일까? 유독 김운기 작가의 사진에는 어머니와 정겨운 농촌 풍경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진마다 자세한 설명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적어 놓아서 한 장의 사진은 역사 기록이 된다.
“예전엔 담배 건조실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어디를 가나 담배 건조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죠.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도 담배가 목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서 그걸로 자식들 공부시키는 집들이 많았답니다.”

또 그의 사진 속에서는 충북의 마지막 모습들도 볼 수 있다.
“1989년 청풍강의 마지막 뱃사공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 서울서 소금배가 제천 청풍까지 올라오고 농작물이 서울로 실려 가던 청풍강의 나루터에서 마지막 뱃사공이었던 석병춘씨를 만났었는데, 무척 아쉬워하며 서글퍼했죠. 자기 대에서 나룻배 운행이 중단된다고요. 충주댐 건설 때문에 나룻배가 사라지게 됐거든요.”

김운기씨는 카메라를 통해 충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담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큰 사건이나 이슈가 되는 사진들은 누구나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전 그런 사진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런 것들도 다 우리의 기록이 되고 소중한 자료가 되거든요. 더 값진 사진이 될 테고요. 그래서 평생교육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항상 이야기 합니다. 특별한 것은 우리 곁에 있다고요.”

김운기씨에게 이 사진집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지난 12월 6일 아들의 결혼식 답례품으로 직접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들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오시는 분들에게 뭔가 특별하고 의미 있는 답례를 해야겠다 생각해서 그 동안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이 사진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료를 정리하면서 충북의 변화를 실감했어요.”

사진 한 장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찍는 사람의 이야기와 찍힌 사람들의 이야기, 또 그 시대의 이야기. 더욱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져가는 현대에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건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까.

김은지/ 프리랜서

 

김운기@박이 주렁주렁

 

김운기@담배건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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