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하면 까치설이다. 마당에는 솥이 걸리고 하루 종일 조청 고는 단내가 풍겼다. 어른들은 만두 속 다지랴 가래떡 썰랴 분주했으나 우리 딸들은 설빔 생각에 들떠 지냈다. 며칠 준비해 온 설빔이 까치설에는 어지간히 끝났던 것이다.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바느질부터 시작하셨다. 어느 날 잠결에 일어나면 호롱불 밑에서 마름질한 천을 꿰매는 어머니가 보였다. 깃과 소매가 색동으로 된 저고리는 참 고왔지만 언니가 입은 다음에야 차례가 왔다.

그게 불만인지 오래 된 가족사진에 보면 까치저고리 입은 언니를 곁눈질하는 내가 있었다. 언니가 열 살이고 나는 네 살 때였다. 아무리 옷 샘이 많기로 줄곧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다녔으니 내가 봐도 참 어지간한 샘 꾸러기다.

까치설의 또 다른 추억은 쌈지떡이다. 만두와 식혜 수정과 등도 있었으나 찹쌀반죽에 팥 앙금 소를 넣고 지진 그 떡이 최고 좋았다. 설 음식이라 특별히 파란 쑥갓과 실고추와 밤 대추를 채 썰어 고명으로 끼얹는다. 수수부꾸미와 흡사한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지 잔뜩 먹고는 배탈이 나는 게 일이었다.

달착지근한 팥 앙금은 먹을 때마다 물리지 않았고 고명의 배합이 저고리의 색동무늬와 비슷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뭉그러지게 삶은 팥을 으깨서 소를 만든 뒤 옥양목처럼 뽀얀 찹쌀반죽에 넣고 지지는데 반죽 모양이 쌈지와 비슷하다. 어쩌면 세배를 드릴 때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세뱃돈으로 받는 설렘이 더 크게 작용했을까.

쌈지는 담배와 부시 등을 넣는 작은 주머니로, 가끔 비상금을 넣기도 해서 쌈짓돈이라는 말의 시초가 되었다. 그렇게 감춰 뒀다가 설날 아침 세배를 드리는 손자들에게 끌러 주시므로 받으면서 애틋한 정을 느끼곤 한다. 반면 문창호지로 겹겹 두른 뒤 풀어지지 않게 헝겊으로 꼭꼭 싸맨 건 할머니의 쌈짓돈이다. 그것을 오랜 날 고쟁이 주머니에 찔러 둔 거라 받을 때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었다.

설이 되면 은행에서 새 지폐로 바꿔오는데 우리 아이들이 나 어릴 적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받는 그 기분일까 싶어 생각이 많다. 세뱃돈을 받으면서 듣는 덕담 때문이다. 우리가“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라고 절을 드리면 두 분은“오냐, 너희도 튼튼하게 자라고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씀을 내리셨다.

설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지 않은 게 없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의 색동저고리는 물론 쌈지떡과 세뱃돈도 좋았지만 더 소중한 건 덕담이다. 늘 비슷한 내용이었어도 기억에 남았다. 쌈짓돈은 여느 때도 자주 받았으나 덕담과 함께 세뱃돈으로 받으면서 어우러진 효과다.

설에 오가는 덕담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대화가 아쉽다.“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고 하듯“말은 설날 아침의 덕담처럼”이라는 표현도 나옴직하지 않을까. 모든 게 흔한 시절이라 저고리 꿰매는 것을 보며 가래떡 생각으로 설렜던 게 새삼스럽지는 않으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요즈음 그것만큼은 오래 간직해야 될 미덕이다.
말은 자신의 표현이자 습관의 상징이고 품성과 인격을 조각하는 기구다. 결국 삼가고 두려워할 일이건만 지금은 언어폭력이 사회문제로 등장할 만치 심각하다. 그게 아니어도 거친 날들에서 따스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아쉬운가를 절감하지만 말에도 향기가 있다고, 그럴수록 절제된 언어가 필요하다.

잘못된 글은 수정할 수 있으나 말은 화해 끝에 풀어져도 서운했던 감정은 여전히 남는다. 설날 아침의 덕담을 기억하면서 설날뿐이 아닌 일 년 내 아름다운 언어생활의 계기로 삼다 보면 이미지도 한결 부각될 것이다.

나박김치와 만두소를 만들다 보면 까치설에 대한 기억은 멀어졌으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덕담은 늘 아련한 느낌이다. 보다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게 설의 어원이라면 올 한 해도 예쁘고 향기로운 말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덕담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고 싶다. 설날 아침 덕담을 듣는 그 마음으로……

이 정 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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