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한꺼번에 몰려든 피난민들로 인해 흥남부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덕수네 가족은 미군 함정에 무사히 오를 수 있었지만, 등에 업고 있던 막내 동생이 실종되는 바람에 딸을 찾겠다고 아버지가 다시 배에서 내린다.

거제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 남은 가족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는 장남의 자리는 끊임없는 희생과 인내를 요구한다.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의 등록금 마련과 가족들의 생활비 충당을 위해 ‘파독 광부’를 지원해야 했고, 고모의 가게였던 ‘꽃분이네’ 인수와 여동생 결혼을 위한 목돈마련을 위해 베트남전쟁 참가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갱도가 무너져 생사의 갈림길에 서던 순간, 폭탄이 터지고 다리에 총알이 관통하는 순간에도 그는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해양대에 합격해 선장이 되고픈 자신의 꿈을 이룰 절호의 기회조차도 포기해 가며, 그는 한결같이 가족을 위한 희생적인 삶으로 일관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1950년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힘겨웠을 그 시절을 꿋꿋하게 지탱해 온 덕수의 삶을 그려나간다.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한 희생을 숙명처럼 여기고,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갔던 전쟁세대의 평범한 서민층 아버지를 상징한다.

흥남부두 철수 장면을 시작으로 파독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 찾기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의 줄기 안에 덕수의 삶이 자연스럽게 투영되고, 평범함 속에 감춰진 위대한 삶의 의지와 특별하고 강인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보살핌을 받는 가족들은 외적인 자극제이자 지지자가 되어 그를 지탱해 나갈 수 있게 했고, 간절한 기다림과 그리움 속에 자리한 ‘아버지’의 존재는 굴곡 많은 인생을 꿋꿋하게 버텨나갈 수 있게 하는 내적인 원동력이 된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매 순간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고자 발버둥 치던 덕수의 고단한 삶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위로해준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홀로 오열하던 그가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와 재회하기로 한 장소 ‘꽃분이네’를 처분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국제시장 하늘을 맴돌던 횐 나비 또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영화는 노년의 덕수가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로 시종일관 한 남자의 무거운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크고 작은 에피소드 안에서 묻어나는 유머감각은 장면 곳곳에 스며들어 유쾌한 감동을 더한다. 파독 광부시절에 찾아온 운명적인 첫사랑 에피소드, 매 순간 생사를 함께한 단짝친구 달구의 재치 있는 유머,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과 관련된 에피소드 등 객관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주관적인 개인사를 수놓는 치밀한 연출력도 돋보이고, 흠잡을 때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탁월하다.

가장 서민적인 요소들이 묻어나면서 그 시절 역동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그려진 덕수와 그의 가족 이야기는 한번쯤 되짚어봐야 하는 역사의 한 부분을 그려가며, 세대 간의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작품성, 예술성, 정치이념을 떠나 이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관객몰이를 할 수 있는 것은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옥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감동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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