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가드인 ‘존 오트웨이’는 알래스카의 한 정유회사에 소속된 월급쟁이로, 야생동물들의 습격은 물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로 실의에 찬 그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도, 현실 생활이 즐겁지도 않은 사나이다. 세상의 끝이라 여기는 이 거친 환경 속에서 삶에 대한 의욕이 바닥난 듯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트웨이’는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악천후를 무릅쓰고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했지만 뜻하지 않은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북극하늘 아래 이름 모를 설원의 한복판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자는 모두 7명, 기적처럼 살았지만 생존의 기쁨도 잠시 뿐, 어느 누구도 절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사방으로 흩어진 비행기 잔해와 눈 속에 뒤섞인 시체들, 응급처치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부상자들,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독한 추위와 칠흑 같은 어둠까지도 생생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참혹한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기척도 없이 접근해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늑대들이다. 자신들의 영역에 침입한 낯선 이방인들에 대한 회색늑대들의 본능적인 공격은 그들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을 기다리는 피할 수 없는 지독한 덫이 되고 만다.

영화는 ‘오트웨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앵글은 줄곧 생존에 대한 의지와 삶에 대한 적극성을 전혀 보이지 않던, 심지어는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주인공이 비행기 추락사고 이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모습과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세심하게 담아낸다. 숨을 곳도 벗어날 곳도 없는 극한 상황 속에 놓인 7명의 조난자들은 회색늑대들의 집요한 공격 속에서 한명씩 사라진다. 두뇌싸움을 하는 듯 늑대들은 삶에 대해 지쳤거나 마음이 나약해진 낙오자를 목표로 삼아 공격하곤 했고, 대자연의 일환인 늑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다만 처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름다운 설경이 공포의 무대가 되고 친근하게 여길 수도 있는 생명체가 저승사자를 대신하는 상황 속에서 생존에 대한 그들의 희망은 점점 희박해진다.

‘오트웨이’는 처참한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함께 경험하면서 삶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관찰자로, 더 나아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핵심인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긴박하게 맞물리는 매 순간마다 회피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외로움과 두려움들은 시종일관 그의 주위를 맴돌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지만, 그가 평소에 읊조리는 시구절과 아내와의 추억을 담은 기억의 파편들, 늑대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깊게 뇌리에 와 닿는 아내의 목소리는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주며 잠시나마 값진 여유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늑대와의 대결을 그린 마지막 장면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트웨이’는 늑대의 영역을 벗어나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오트웨이’가 서 있는 곳은 늑대소굴 입구였다. 그는 칼을 손에 묶고 병을 손에 감은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두려움의 대상과 배짱 좋게 맞서 싸운 것에 대한 결과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승리와 패배의 여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삶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 것, 결국 혼자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두려웠던 대상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준 ‘오트웨이’의 행동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는 이미 진한 여운으로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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