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여인이 있다. 오랜 세월 애타게 기다리던 남편 ‘루옌스’가 돌아왔지만, 여인은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족 한번 만나보겠다고 수용소를 이탈해 몰래 찾아온 남편에게 문을 열어주지 못한 죄책감과 눈앞에서 다시 체포되어 끌려가던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그녀의 기억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이 끌려가던 그날 이후부터 그녀는 어느 하루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다.

남편을 보안 관계자에게 고발한 것은 그들의 딸 ‘단단’이었다. 공연에서 주연을 맡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춘 발레학교 유망주였지만,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자가 아버지라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혁명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교육에 지독하게 세뇌되어버린 ‘단단’은 출세에 대한 욕망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시대가 조성한 형체 없는 두려움과 맞설 용기가 없어서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팔아버린다. 여인은 딸의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기억 속에 묻어버리고, 남편을 고발했던 그 순간만을 떠올리며 ‘단단’을 원망한다.

‘루옌스’는 아내의 기억을 되찾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을 낯선 사람처럼 취급하는 아내의 주위를 맴돌다가, ‘5일에 남편이 도착’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그녀가 읽을 수 있도록 작전을 짠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귀환하는 군중 속에서 마중 나올 아내를 기다리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에 대한 아내의 기억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서사적, 심리적 무대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 시기이다. 문혁은 종결되었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은 살아남은 자들의 무의식과 피폐된 삶 속에서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10년의 세월이었고, 대중의 자존감에 무차별 난도질을 자행하던 비극의 역사였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불순한 반동으로 낙인 찍혀 시골이나 변방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고 사상교육을 받았던 이 시기를 모두가 입을 모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라고 말한다.

문혁시기의 산증인인 장이모우 감독은 비극적인 삶을 참고 버텨야 했던 루옌스 가정을 통해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아물지 않은 상흔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혼란과 파괴, 광란의 기운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감싸고, 불신의 기운이 팽배했던 시대적 아픔은 남녀주인공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위로받도록 유도한다. 문혁시기에 핍박받던 ‘지식인’과 이성을 잃고 광기를 부리던 ‘홍위병’을 한 가정 안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감독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다 해도 상처는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매달 5일이 되면 남편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변함없이 역으로 마중을 나가는 여인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 영화의 포인트는 어느 중국인 부부의 눈물겨운 ‘사랑’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근거리를 맴돌며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과, 5일이면 어김없이 역으로 향하는 아내의 모습은 어떠한 시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의 결정체처럼 고귀해 보인다. 특히, 편지나 사진들이 사라진 기억들을 일깨울 수 있다는 권고와 데자뷰 현상을 이용해 보라는 조언에 따라, 피아노연주도 해보고, 해묵은 편지도 읽어주는 시퀀스는 아내가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기억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는 남편의 간절함과 애절함이 한껏 묻어나는 대목이다. 체포위험을 무릅쓰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느라 목청을 올리던 기차역 장면과 혁명가극의 대표작인 <홍색낭자군>을 연기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 한 구석을 뒤흔드는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세월이 한참 지났어도 함박눈 내리는 어느 5일에 보여 지는 그들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기다리는 남편이 있는 여인, 함께 할 수 있는 아내가 있는 남편, 부모가 모두 존재하는 ‘단단’, ‘루옌스’가 끄는 인력거에 아내가 타고, 그 옆에 함께한 딸과 기차역으로 향하는 세 사람, 결여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다만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움만 휘날리는 눈발과 함께 허공 속에 흩어질 뿐.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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