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밤거리를 질주하는 두 남자, 경찰의 단속에 걸려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들은 내기를 시작한다.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면 100유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달릴 수 있게 되면 200유로... 매사가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드리스의 제안에 필립은 기꺼이 동조한다.

불법 레이싱이라도 펼치듯 질서의 범위를 벗어난 드리스의 행동은,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가진 필립에게 기분전환이라도 하게 해주려는 따뜻한 배려였다. 필립 역시 거품을 내뿜는 연기까지 해가며 드리스가 펼치는 즉흥적인 상황극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필립은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최상류층 백만장자이다. 그러나 패러글라이딩 사고 이후부터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어느 한 순간도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처지보다 아내를 일찍 떠나보낸 것에 대해 더 마음 아파하는 로맨티스트이고,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하고 전통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 감상을 즐기는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안타깝게도 매번 치밀한 면접을 통해 고용되는 24시간 도우미들은 대부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드리스가 필립의 저택을 찾아간 목적은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서였다. 구직 면접에서 세 번 거절당하면 받을 수 있는 지원금 때문에 필립의 불합격 도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의 색깔이 전혀 다른 드리스로 부터 남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읽어낸 필립은 그를 정식으로 채용한다. 드리스는 생활고에 찌든 엄마와 돌봐야 할 여섯 명의 어린동생들도 부담스럽고, 맘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욕실조차 갖춰지지 않은 빈민촌을 떠올리면서, 필립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언터처블>은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육체적인 환경이 피폐해진 중년 남자와 정신적인 안식처를 찾지 못하는 젊은 청년은 서로가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며 완벽한 콤비를 이룬다. 이따금 거칠고 자유분방함이 지나쳐 무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드리스를 보며 지인들은 그의 전과를 들먹이며 필립의 안전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필립은 돈과 장애만이 주된 관심사인 주변사람들과 다르게, 솔직하고 인간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해 주는 그 순수한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자신을 보통사람과 똑같이 대하는 드리스 덕분에 당황스럽고 난감한 순간도 경험해 보지만, 필립은 잠시나마 장애를 잊으며 마음의 평온을 찾고 행복해 한다. 펜팔 편지만 주고받던 이성에게 용기 내어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꿈꾸던 데이트마저 현실이 된 것처럼, 그는 필립에게 제한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삶에 대한 애착과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매개자가 되어준다.

그러한 까닭에 영화 속에 그려지는 두 남자의 일상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이성과 감성, 부유함과 가난함, 신중함과 즉흥적임, 고풍스러움과 세속적임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대립과 조율 속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잔잔한 유머로 그려나간다는 점도 색다르고, 두 남자가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과정이 충분히 숙성된 강한 향기로 전해지는 순간도 감동적이다.

영상 속에 흐르는 다양한 장르의 배경음악 또한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동의를 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일파티 시퀀스에서 보여 지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조화와 드리스가 주도하는 재치 있는 이벤트 장면, 두 남자가 함께 스릴을 즐기는 패러글라이딩 장면, 더 나아가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들이 지금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행복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엔딩 장면까지 매 순간이 유쾌하다.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을 간접 체험했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세상 어느 한 구석엔 인간에 대한 온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관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남기는 값진 여운이 아닐까 싶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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