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는 파리 기차역에 있는 시계탑 내부의 감춰진 관리실 안에서 숨어 지내는 나이어린 소년이다. 갑작스런 박물관 화재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유일한 보호자가 된 술주정뱅이 외삼촌은 시계 관리하는 일을 그에게 떠맡긴 채 사라진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그는 역사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떠돌이 아이들을 무조건 붙잡아 강제로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는 역무원의 눈도 피해 다녀야 하고, 외삼촌의 부재와 그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방인의 존재를 숨기려면 거대한 탑에 걸려있는 시계 또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세상과 단절된 일상 속에서 그나마 꿈과 희망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아버지가 남긴 낡은 비밀 노트 한권과 고장 난 오토로봇 뿐이다. 휴고는 로봇 안에 아버지가 남긴 메시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간절함 때문에, 비밀노트에 정리된 설계도를 보면서 로봇을 작동시키고자 여러 가지 궁리를 해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역사 안에 위치한 장난감 가게에서 로봇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훔치려다 가게 주인인 조르주에게 붙잡히고, 비밀 노트까지 빼앗기게 된다. 비밀 노트를 돌려받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가득 찬 휴고, 그리고 그 노트를 살펴보다 뜻밖의 놀라움에 표정이 어두워져버린 조르주, 그들의 만남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휴고>는 초기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던 영화계의 거장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1861.12.8.~1938.1.21.) 감독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고장 난 로봇을 고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휴고’의 순수한 집념과 호기심이 로봇의 작동을 가능하게 했고, 로봇과 그것이 그려낸 이미지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한 거장의 영화인생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하는 신선한 매개체가 된다. 그 노장은 이미 시작부터 새로운 예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읽어내고, 다양한 편집 효과를 시도하면서 3D에 가까운 오락적 판타지를 구축해 나간 실력이 대단한 마법사였다는 점, 그리고 촬영을 시작하기 전 모든 쇼트(Shot)를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풍자 만화가였다는 점은 언제 들어봐도 참 흥미로운 스펙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휴고’와 ‘멜리에스’의 조우는 여러모로 값진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숨겨진 공간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휴고’가 시계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기만 하던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고, 화려했던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과 새롭게 소통하고자 하는 노장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오갈 데 없는 ‘휴고’가 멜리에스의 손녀딸 이사벨과의 만남을 통해 따뜻한 우정을 느끼고, 결국 새로운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는 장면 곳곳에서 상징적인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거대한 벽시계, 하트 모양의 열쇠를 기다리던 오토로봇,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던 프랑스 기차역은 물론이고, 유료상영을 통해 영화의 탄생을 알렸던 첫 작품(<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뤼미에르형제, 1895년12월28일)을 상기시키는 주인공 ‘휴고’를 통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최초로 SF 장르의 특징적 요소를 제시했던 <달세계의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1902)>을 비롯하여 영화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들을 재현해 낸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잊혀져간 것에 대한 소중함과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여유 있는 시도와 영화를 대하는 애틋한 태도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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