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알아도 서경덕이 지은 우주관과 이기론은 잘 모른다. 한국인이면서 우리의 고전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화담은 우주 공간에 가득한 하나의 원기(原氣)를 형이상학적 대상으로 삼았다. 기(氣)는 물리학적 술어로 에네르기이다. 이 기가 우주의 질량이므로 만일 이것이 없어지면 우주는 곧 파멸된다.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우주 구조에 대하여 우주 구면의 반경은 우주의 전질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질량이 제로가 되면 반경도 따라서 제로가 된다는 이론과 같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 곧 에너지는 질량 × 빛의 속도 × 빛의 속도 (E equals mc square)와 같은 이론이다.

우주의 물질과 이것을 담아 놓은 공간도 다 소실되고 또는 커지기도 한다는 논리와 똑같은 우주관, 화담은 아인슈타인처럼 방정식을 구하지는 못하였지만 이것은 ‘저 주염계와 장모거와 소강절이 한 마디 말도 못하고 한 자도 써내지 못한 경지’ 라고 크게 자부한 것이었다.

또한 화담은 중국 정주학파인 장모거의 기와 주자의 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퇴계학파가 기와 이를 둘로 나누어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이기이원설을 지양 통일하여 일원론적으로 보았다. 이야말로 한국인의 탁월한 창조력을 발휘한 혜성과 같은 과학자이면서 사상가였다.

“둘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음기와 양기요 움직임과 고요함이다.” 이렇게 말한 이론은 플라톤의 순수형상인 이데아와 같은 존재가 아니요, 펼치려 하나 펴지 않고 움직이려 하나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는 순수 동작이다. 순수 동작이므로 우리는 감각할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러므로 화담은 ‘느끼어 마침내 통한다.(感而遂通)’고 하였다. 소극적인 음기와 적극적인 양기가 생기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천하 만물은 생성 발전하게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총명한 자질로 학문의 황무지를 개척한 화담은 송도 명기 황진이와의 로맨스로도 유명하다. 진이가 말하기를 “송도에는 삼절이 있는데 화담 선생님과 나와 박연폭포입니다.” 자존심 무척 강했던 진이는 이런 말도 남겼다. “지족선사는 30년 동안 벽을 향하여 불문에 정진했지만 나에게 홀려 하룻밤 사이에 그 전공(前功)이 허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화담 선생님은 내가 가까이 한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그 분은 마음과 몸을 어지럽히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성인다운 분이십니다.”

화담은 1489년에 태어나 57세 되던 1546년 7월 7일에 고요히 눈을 감았다. 임종 때에 한 제자가 “선생님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이 어떻습니까?”하고 물으니 “죽고 사는 이치를 내가 이미 알고 있은 지 오래다. 마음이 편안할 뿐이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전태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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