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순수하지 못하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
“나는 누구에게도 안 넘어가! 사후세계? 영적전쟁? 흥, 그것을 믿는 인간들은 모두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야. 지금은 인간도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야. 현대 과학이 우주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시대에 그 따위 미신 같은 소리 집어치워!”
이렇게 호언장담하면서 신의 세계를 부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가장 똑똑한 척 해도 가장 우매한 자들이다. 왜 그런가. 이 열쇠를 스웨덴 사람 스베덴보리가 제시하였다. 그가 지은 『위대한 선물』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는데 모든 부정은 곧 긍정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는 본시 천재과학자였다. 20개 과학분야에 정통했으며 150여권의 저서와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18세기 만유인력의 제창자인 뉴턴과도 교류했다. 그러던 그가 과학계를 떠나 영적체험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영능자(靈能者)로 변모하였다. 그는 사후세계를 과학자의 눈으로 보고 그 전문성으로 27년이나 분석했다.

인간의 육체는 나비가 버린 빈껍데기와 같은 것, 참 생명은 영체 쪽에 있지 육체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는 더 큰 생애가 있고 그 세계가 진짜 삶이라는 증언, 그는 인간이 반드시 맞이해야 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생생한 체험을 통하여 해결해 주고 있다.

헬렌 켈러 여사는 말했다.
“나는 스베덴보리의 저서를 읽고 완전히 죽음의 공포를 해결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행복했고 인류를 위해 공헌하다가 승천했다.

스베덴보리는 생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사랑했다. 연꽃에 맺힌 이슬방울은 수정처럼 맑다.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흙탕물 속에서 피어났다고 탁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연꽃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티끌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천국인 후보자가 연꽃처럼 자라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불교의 자비가 기독교의 사랑과 무엇이 다른가. 석가모니께서 가르치신 번뇌를 극복하고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대오각성하는 경지가 기독교의 자기 사랑을 극복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 원수를 보되 부모와 같이 섬겨라.’는 원각경(圓覺經)에 나오는 말이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바이블의 가르침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천국은 어느 특정 종교의 전유물도 아니요 전 인류를 위해 지어졌다. 천국에 가면 무슨 종교를 믿다가 들어왔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다 왔느냐, 그 사랑의 저금통장만 가지고 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스베덴보리는 강조한다.

거진이진(居塵離塵)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티끌 속에 살되 티끌을 떠나 살라는 말이다. 스베덴보리도 말했다. 이웃 사랑을 하려면 이웃이 많은 사회 속에 들어가 살아야지 어디로 가겠느냐 라고.  
 

전태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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