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연의”속의 여러 영웅들 중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은 조조일 것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비유는 “조조 같은 간사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조에 대해 간웅 혹은 지략가, 훌륭한 정치가 등 후세의 평가가 다양하게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조조가 당대의 기라성 같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중원을 통일한 영웅이라는 사실은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조조는 늘 변화무쌍하고 막힘이 없었다. 용서를 모르는 냉혹함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영웅의 관대함을 보이기도 하고, 아둔한 집착으로 일을 그르치다가도 상상도 못할 지혜와 현명함으로 일을 반전시킨다. 교활한 이리의 눈으로 상대를 꿰뚫어 보다가도 어느새 소처럼 순박하고 맑은 눈을 보이기도 하며 당대에 비교되는 많은 인물들 중 월등하게 시문에 능통하여 감성적인 지적유희를 즐기는가 하면 호색 또한 마다하지 않아 어느 면에서나 모자람이 없었다.

야누스적 냉혹함과 관대함
정사의 사실여부를 떠나 삼국지 연의에서 조조가 가진 야누스적인 냉혹함과 관대함을 대표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장수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큰 아들 조앙을 사지에 버려 죽게 한 일이나 동탁을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피신하던 조조가 경박한 판단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려던 아버지 친구 여백사 일가족을 해친 일, 당대 최고의 재사였지만 눈엣가시 같던 양수를 계륵(鷄勒)으로 죽인 일 등은 잔혹한 성정의 산물로 비난의 대상이지만, 원소와 최후의 일전인 관도대전에서는 수하 장수들이 원소와 내통한 서한을 읽지도 않고 불태워 죄를 묻지 않는 일은 관대함이 돋보이는 사례로 손꼽힌다.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과 명확한 목적
이러한 그의 행적에는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과 명확한 목적이 있었음은 범인과는 사뭇 다른 차이라고 보여 진다. 장수와의 싸움에서 자기가 죽는다면 통솔하던 수많은 장병의 안위를 아무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므로 자신의 핏줄을 자르는 아픔을 감수하였고, 양수가 천하의 기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일찍이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다툼에 끼어드는 등 양수의 삐뚤어진 기재가 장차 후계구도 결정에 미칠 위험성을 아예 제거한 것이다. 여백사 일가족 살해 역시 비록 조급한 판단이었지만 조조가 남긴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날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이 한마디에서 조조의 인생관과 야망을 볼 수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굳은 결의의 실행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서한을 불태운 사례 또한 죄를 벌하여 당장의 기강을 확립하기 보다는 최대 강적이었던 원소를 격파하고 중원에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新星)으로서의 포용능력을 과시하는 “천하에 대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열린 의식을 가진 현실주의자
조조 ! 그는 늘 세상을 향한 열린 의식을 가진 현실주의자였음을 볼 수 있다. 백성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함에 있어 주저하거나 막힘이 없었고, 목표를 향한 큰 틀 속에 로드맵을 상세하게 정하기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그가 가진 냉혹함, 관대함, 교활함, 감성 등 다채로운 도구들을 시의적절 하고 탄력적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남들의 시선이나 가식, 절차 등 형식적인 것들에 구속되지 않고 사안의 본질, 인간의 본성을 명확히 파악하여 실질만을 추구하였으며 사람을 알맞게 써서 최고의 역량을 이끌어 내었고, 숱한 음모와 현혹에도 매의 눈으로 거짓과 참을 구분하여 흔들림이 없이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최근 후세들은 그를 “조조 같은 간사함”의 틀 속에서 꺼내 그가 가진 인간성, 용인술, 처세술 등등 모든 부분을 여러 각도에서 프리즘처럼 재조명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점점 복잡다난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800여 년 전의 “팔색조 영웅 조조”에게서 삶을 설계하는 키워드를 찾는다면 “세상에 대한 열린 의식”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용국/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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