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희’는, 늘 그랬듯이 가족들의 아침준비를 도우며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호된 시집살이도 모자라 벌써 15년 째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 의료사고로 인해 의사로서의 자존감마저 바닥에 떨어진 남편, 어긋난 사랑에 빠진 딸과 철없는 삼수생 아들, 그것도 모자라 폭력과 도박을 일삼으며 수시로 목돈을 챙겨가는 망나니 남동생까지, 그들 모두를 챙기고 보듬어야 하는 그녀의 일상은 무척 부담스럽고 고단해 보인다.

하지만 ‘인희’는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적인 보살핌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며, 인내하고 참아낸다. 압화 공예를 취미삼아 꽃 속에서 힐링의 시간도 보내고 싶고,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신입생도 되어보고 싶기도 하고, 양평에 새롭게 준비한 보금자리가 하루 빨리 완성되어 이사도 가고 싶은 그녀다. 딸의 결혼 문제, 아들의 장래 걱정 역시 그녀의 몫이다. 오줌소태가 암 덩어리 때문에 나타난 증세인줄도 모른 채, 그 악성종양이 온 장기에 퍼져 과학의 힘도 기적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그녀는 가족구성원의 ‘엄마’ 노릇에 여념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엄마의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진정 죽음을 앞두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나보다. “엄마 안 죽어.” 하며 생각 없이 내뱉던 아들의 대사처럼, 늘 그렇게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엄마’다. 아무리 퉁명스럽고 뻣뻣하게 굴어도 언제나 내편에 서서 이해해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아내’였고, 망령든 시어머니가 눈 감는 순간까지 그 곁을 굳건히 지켜나갈 것만 같았던 ‘며느리’였다.

가족들은 너무 익숙한 대상인지라 엄마에게 따뜻한 눈길한번 보내지 않았고, 소홀했으며, 적당히 무관심했다. 남동생과 시어머니는 그렇다 쳐도 자식들마저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느라 엄마와 함께 할 여유가 없었고, 무력감에 빠진 남편 또한 자존심과 싸우느라 아내를 돌아볼 너그러움이 부족했다.

엄마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가족들이 자신의 빈자리를 버거워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주변정리를 해나간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그리고 밀려드는 그리움 앞에서 가족들의 때늦은 후회와 관심은 애처로움과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영화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그리 낯설지가 않다. 중년의 연기파 배우들의 노련함 덕분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었고, 가족들의 쓸쓸한 독백 장면과 이성적인 그 어떤 통제도 불가능하던 시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는 화장실 장면, 또 남편이 아내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 장면 곳곳에서 감독의 정성과 세심함 또한 한껏 묻어난다. 이별을 위한 변주곡인양 귓전에 맴도는 ‘백만 송이 장미’의 음율 속에서 꽃보다 찬란했던 중년 부인의 인생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가족들의 노력이 더욱 값진 의미로 부각되는 것도 인상적이고, 시종일관 자극하고 뭉클거리게 하다가도 경건한 마음으로 절제된 감성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점 역시 이 작품의 묘한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더 늦기 전에 소중한 것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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