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성장과 함께 내면의 힘과 자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존 브래드쇼(J.Bradshaw)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Reclaiming and championing your inner child)로 유명하며 인기 상담가로 한때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미국은 이미 심리치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이후 ‘내면아이’가 많이 알려졌다.

이외에도 억눌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어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상담이론에 언급되기는 하나, ‘내면아이’를 다루는 것이 혹자는 현실을 과거에 가두고 성숙한 인격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현재의 문제를 접점이 없는 과거의 사실과 연결 짓거나 합리화하는 것은 지양해야하나, 어떤 시기에 경험했든 극복되지 않거나 계속 기억 속에서 나를 잡고 있는 상처가 있다면 이에 대한 치유는 필요하다. 그리고 내면의 나와 소통하며 돌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의 딸이자 아동정신분석으로 유명한 안나 프로이트는 “나는 힘과 자신감을 찾아 항상 바깥으로 눈을 돌렸지만, 자신감은 내면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상담사로 일하며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면의 힘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나는 이들을 통해 놀라운 삶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배우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부부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라는 속담을 믿기보다 빨리 전문가를 찾아 갈등이 쌓이지 않도록 한다. 자녀가 어려움을 겪어도 “애들은 다 저절로 자라기 마련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바로 상담을 신청한다. 시대가 많이 바뀐 것도 있고 우리 스스로 해결을 위해서 시간이란 이름에 기대어 방임하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성숙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평소에 내면의 나를 항상 인식하며 돌보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인데, 이를 위해 상담하며 느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나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을 때 아내에게 반찬투정을 하거나 무심한 남편에게 입맛이 없다고 짜증을 내기보다 ‘내가 나를 사주는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배우자가 있다면 “오늘 근사한 저녁 먹고 데이트 할래?”라고 권해보거나 싱글이라면 평소 챙기지 못했던 친구에게 “맛있는 거 사줄게.”라고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근사한 음악을 준비하고 나를 위한 식탁을 차려보는 것도 좋다.

둘째,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물건,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내가 사고 싶은 것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들어왔던 것은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니?” “어떻게 네 입맛대로 사니?” 같은 말이다. 과거의 사회는 경직된 기준을 두고 이에 맞추어 똑같이 걸어가는 사회였다면 이제는 각자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도 내 옆에 누군가가 함께 걷고 있음을 발견하는 사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흥미와 즐거움도 인정해 주는 법을 안다. 소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며, 이로 인해 생긴 여유는 당신에게 자신감을 선물할 것이다.

셋째, 마음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진정한 휴식은 몸과 함께 마음도 쉬게 해주는 것이다. 마음을 쉬게 하는 마법의 주문은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이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는 무역 10대국이라는 빛과 함께 경쟁과 불평등이라는 그림자를 얻었다.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진실이 가려져 진정한 나를 찾는 작업보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개성과 인권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발전이 매체를 통해 비추어지는 상업적 유혹을 능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별한 유행은 없지만 도태되지 않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넷째, 나를 벌주거나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각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오지만 사실은 매우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자녀가 있을 때, 언뜻 보면 자신의 일을 책임 있게 처리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있으나 그 내막을 열고 들어가면 다양한 양상이 보인다. 공부에 취미가 없음에도 획일적인 방법으로 진로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고 학습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의 잠재력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를 알아갈 기회가 박탈되었고, 더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실제로 산업분야에서 필요한 인재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오롯이 개인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잘못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문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를 지치지 않고 돌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정신건강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고, 삶의 정상적인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고, 생산적이고 유익하게 일할 수 있고, 자신의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웰빙의 상태”로 정의된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내 자신이 잠재력을 알고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으며 이것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웰빙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에 가까운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일을 하는 것도,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도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나’ 그리고 그 소통하는 대상인 ‘내면의 자아’와 친해지자. 그리고 돌보고 사랑하자.

 

/ 수필가 정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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