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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끝의 시작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20.02.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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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점퍼처럼 접어 배낭 속에 넣고 나를 찾아 나선다. 문명의 기억은, 가득 찬 내장처럼 붐비는 비행기 안에 놓고 내린다. 여기 나는 없다. 그저 눈을 뜨고 꿈꾸는 사람이 있을 뿐.

릭샤에서 내려 인파로 가득한 바라나시 골목을 걷는다. 비좁은 골목에는 작은 탁자에 물건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그들 옆으로 가끔 한 무더기의 순례 객이 지나간다. 여행자인 듯한 서양인들도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친다. 길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똥을 피하며 정신없이 걷고 있는데, 깡마른 남자가 달려들어 손을 내민다. 돈을 달라는 것이다. 몇 발자국을 떼었을까 이번에는 여자다. 여자는 갓 태어난 듯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온다. 애써 눈빛을 피하니 다른 것이 눈을 파고든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사람, 그 옆에 어슬렁거리는 소, 길 한 가운데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는 개까지 다양한 풍경들이 눈앞에 넘실거린다. 타인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냥 펼쳐 놓고 있는 풍경들이 신기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소와 개를 비켜가며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난다. 나는 마치 그들이 투명한 물체인 양 표정을 감추며 지나친다. 태연한 척, 보고도 보지 못한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시선을 허공에 둔다. 동정심에 자칫 눈빛을 주었다가 벌떼처럼 달려드는 사람들로 포위되어 오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을 보지 않으며 목적지를 향한다. 골목의 끝에 즐비한 계단이 조직적으로 서 있다. 그 계단 아래에 갠지스강이 누워서 고요히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갠지스강에 도착하자 어둠이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풀기 시작한다. 까만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며 화장터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강가에 늘어선 시멘트 부지인 가트는 오래된 건축물을 중심으로 구역별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화장터가 있는 가트로 배가 흐른다. 강의 옆구리에 자리를 편 화장터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수많은 시신이 장작더미에 쌓여 화장되고 있다. 갠지스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바램이라고 한다. 갠지스강은 힌두교도 사이에선 성스러운 강이자 인도 문명의 젖 줄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물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고 죽은 후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곳이란다.

거대한 불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펴지고 굽혀지기를 반복하며 하늘길을 안내하는 듯 타오른다. 춤추고 있는 불구덩이를 세어보니 26개다. 26개의 인생이 승천하고 있는 중이다. 불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지치지도 않고 손을 흔들고 있다. 이승을 떠나는 인생을 보며 언젠가는 두고 갈 이승을 다시 한번 눈으로 만져본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많은 시체가 노란 천에 쌓여 들것에 들린 채 불타기를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죽는 데도 기다려야 하는 절차가 즐비했다.

기다림에 지친 밤이 밤의 몸을 검게 물들이고 있다. 죽음 후를 생각한다. 과연 저승이 있을까. 우리의 영혼은 그저 뉴런의 조합일 뿐인데, 그 조합들이 깨지고 나서 영혼이 갈 집을 믿고 사는 사람들. 어쩌면 죽고 나서 자신이 지워진다는 것을 믿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타고나면 그만인 것을.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을 것을. 그러나 이것도 나의 단순한 생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믿는 자에게는 사후세계가 있을 테고 나처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후는 없는 것이리라. 26구의 승천을 보고 뱃머리를 돌린다.

돌아오길 은박접시에 오렌지색 꽃을 담아 파는 디아를 샀다. 꽃에 불을 켜서 붙이고 꽃불(디아)을 강물에 띄우며 소원을 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군가 검은 솥에 별을 튀기는지 밤하늘이 총총하다. 그들의 믿음대로 잘 불타서 잘 승천할 수 있기를. 생의 마지막 날이 죽음의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감사하며 믿음으로 밤을 그리고 있는 갠지스강의 사람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밤이다. 어둠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오늘 하루에 검은 이불을 토닥이며 덮어준다.

 

/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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