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이곳을 찾아왔더라면, 지금의 내가 좀 더 잘 구워져 있었을까. 운명을 알고 그 운명에 유약을 발라가며 원하는 빛을 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까. 정해진 길을 덤덤하게 걸으며 마음을 내려놓고 깃털처럼 살았을까.

거실문을 열고 나오는 내 등을 보살의 달관한 미소가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마당 한 쪽에 소나무가 서 있었다. 초록 가시로 하늘을 찌르며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사이로 바람이 바람을 흔들며 지나갔다. 잠시 왔다 가는 삶인 것을 무어 그리 궁금해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해답을 얻었다고 한들 그대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닐진대. 머무는 것은 잠시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데. 언젠가는 나도 나를 지우며 지워질 것을.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그녀들과는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만나왔다. 그녀들을 처음 만난 건, 젖은 빨래처럼 무겁게 흔들리던 이십 대 중반이었다.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고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당시,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내겐 버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으니, 아이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보채는 아이를 업은 채 매일 차가운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볼일을 보곤 했었다. 심지어는 밥을 먹일 때도 등에 업은 채 팔을 등 쪽으로 돌려 밥을 입에 넣어주곤 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의 양육법에 대해 너무 지식이 없어서 어려운 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무지로 인해 나도 아이도 힘든 것만 같았다. 고민 끝에 유아교육과에 재입학을 했다.

풋내가 폴폴 풍기던 내게 육아법에 대해 조언도 해 주고 고민도 들어 주던, 동기이자 언니들을 오늘 만났다. 우린 반년 동안 쌓인 이야기를 식탁에 펼쳐놓고 수다를 풀었다. 수다가 거의 다 풀릴 무렵, 영애 언니가 신년이니 점을 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영운동에 있는 점집을 찾아갔다. 용하다고 소문난 보살이 있다고 했다. 거실문을 열자 향냄새가 가득 일렁였다. 단출한 살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창가엔 칼랑코에 꽃이 별처럼 노랗게 웃고 있었다. 분위기에 쓸려 가긴 했지만 어떤 것을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나이가 아니니 궁금한 것이 많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금전 운을 묻기도 머쓱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예측불허의 복병을 제외하면 내 삶은 변화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대단한 요행을 바라는 사람도 아니니, 그동안 살아온 대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비슷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궁금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가 공부에 도통 취미가 없다고 하자 가만 놔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제 밥벌이를 할 거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다시 머릿속을 뒤져 질문을 짜냈다. 집을 팔고 싶다고 하자 팔월 안에 팔린다고 했다. 물어본 김에 가당치도 않은 승진에 대해서도 던져 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편하게 살아라.”였다. 뭐 하나 확실한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은 모두 정확했다. 매사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놔두라는 말은 아등바등 세상을 살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는 뜻이리라.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고요하게 카운슬링을 하는 소박한 보살의 모습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만그만한 날들을 참 많이도 살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만그만한 날들이 내게 불어오리라. 커다란 아픔이나 시련이 오지 않길 바란다. 늘 그만그만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올 한해도 빌어 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살라고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바람이 가만히 내 어깨를 두드린다.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

 

김나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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