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야할 때 기차를 타고 가려하면 미리부터 마음의 설렘이 달려간다 대학시절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친구들과 남쪽으로 남쪽으로 밤새워 달리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없으니 그립다. 그 시절 친구 중에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하늘로 가버려 영영 만날 수 없으니 애달프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외동 딸 3대가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가던 일도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시간예술처럼 그리워질 뿐이다. 딸애도 결혼하여 아기 엄마가 되었고 아버지 하늘가신지도 십 여 년이 넘고 있다. 말없는 먼 산마다 나무가 되셨는지 저녁노을이 산마루 넘을 때면 아버지가 더욱 보고 싶다. 실은 아버지가 어린 내게 제일 먼저 기차의 추억을 건네주신 분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군본부에 문관으로 근무하시게 된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온 가족이 이사했는데 한강변 근처에 집을 얻어 살게 되었다. 학교를 파하고 어머니를 따라 한강으로 빨래를 하러가는데 기차가 쉴 새 없이 한강다리를 오가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 기차 안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사람이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하여 기차 칸수를 세며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곤 하였다.

시절은 빨리 흐르고 세월은 변화 없이 흐르진 않는다. 그 수많던 기차는 다 어디에서 쉬고 있는지 이젠 기차하면 그저 빠름만 최고인 KTX를 떠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4년 용산에 철도국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국민이 빠르고 안전한 철도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2004년에 세계 5번째로 300km/h급 고속철도를 개통하였으니 자랑스런 일이기도 하다. 고속철도망의 구축은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에너지 소비량이 승용차의 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에 불과한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임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경주에 가야할 기회가 왔다. 충북시인협회 고문 오탁번 시인이 목월문학상을 수상하기에 부회장인 내가 가기로 하였다. 마침 결혼기념일도 임박해 남편과 기차여행 삼아 가기로 하니 한편 기쁘기도 하였다. 놀랍게도 시간 반이면 경주에 간다니 빠르긴 빠르다. 딸애와 상의하니 예매하여 코레일 톡을 핸드폰에 깔아 준다. 승차권 확인을 여니 열차호수와 좌석번호가 상세히 나와 있어 그것이 종래의 기차표 대신이라니 과연 좋은 세상이 온 것인가?

꽃을 안고 다니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축하꽃다발을 청주예술의 전당 근처 꽃집에서 마련하여 향내를 맡으며 오송역으로 달려간다. 불금이라선지 주차장마다 만차 표지가 흔들린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황급히 계단을 오른다. 안내 방송에 맞추어 드디어 KTX를 기다린다. 인접한 철로의 기차가 표범처럼 달려오더니 눈 깜박할 새 날아가 버린다. 보통 18호까지 있으니 까맣게 길기도 하다. 다시 칸 호수를 확인하고 젊은 소녀에게 경주가는 것 맞나 확인하고 기차에 오른다. 꽃다발을 제일 먼저 머리 위 좁은 시렁에 다치지 않게 올려놓고 한 숨 돌린다. 산도 내도 마을도 뒤로 슥슥 밀려난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기차여행이라니 꿈같기도 하여 연방 미소가 피어난다. 결혼하여 34년이 흘렀으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것일까? 남편이 아침 일찍 일어나 외식을 꺼리는 나를 위해 김밥을 말아 놓았다. 물도 뜨겁게 끓여 보온통도 챙겨와 고마운 마음을 손잡아 전해본다. 김밥 도시락을 꺼내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먹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여행 단골메뉴인 삶아온 달걀도 봉지에 넣어 까먹으니 옛날 아버지 모시고 가던 기차여행이 다시 그립다. 아버지는 첫 선에 남편을 사위감으로 허락하셨다.

남편은 나의 첫 제자의 삼촌이다. 제자의 어머니가 교대를 갓 졸업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사랑을 쏟던 내게 선을 권하였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집에까지 데려와 공부를 시키는 등 결혼에는 관심이 없던 나는 없던 일로 하였다. 무슨 인연일까? 그 후 7년이나 세월이 흘러 드디어 만나 평생 연인이 된 것이다. 이런저런 추억을 속삭이다 보니 어느 덧 신경주 역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혹시 빠트린 게 없나 좁은 좌석 사이를 들여다보며 서둘러 하차 하였다. 새로 지은 것인지 신경주 역은 내부가 드넓고 편의시설도 곳곳에 있어 어리둥절하다. 안내소를 찾아 호텔가는 좌석버스 번호를 알아보는데 왠지 팔 한쪽이 허전하다. 아니 그제사 꽃다발이 보이지 않는다. 내리는데 정신을 쏟다보니 시렁에 얹어둔 꽃다발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뒤돌아보아도 빠르기만 한 기차는 어디쯤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둘 다 그리 까맣게 꽃을 잊고 매정하게 내릴 수 있단 말인가!

호텔 내에는 꽃집이 없다니 경주시내에서 내려 새 꽃다발을 다시 만들어 전달은 무사히 하였다. 지금도 기차와 함께 달리며 그 꽃다발이 잘 말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누가 발견하여 기쁘게 가져갔는지 궁금한 꽃다발이다. 내가 기차를 처음 만난 지 50여년 만에 늘 내 꿈을 싣고 달리던 기차에 꽃다발을 선물한 셈이다. 아니 기차는 나의 꽃다발을 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얹어둔 시렁에서 곱게 말라가면서 기차를 타고 멀리가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나누어주며 경자 새해를 매일 달렸으면 한다. 나의 먼먼 꽃다발이여!

/ 박종순 시인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