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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점검하다
시간을 점검하다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20.01.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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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1월이 가고 봄이 되면서 신년 벽두의 설렘이 조금씩 식상해질 것 같다. 시간은 살처럼 흐르고 그럴 때마다 초조했던 기억이 잡힐 듯 선하다.

에스키모 인들은 늑대를 잡을 때 나무로 된 창에 피를 발라 얼음판에 세워 둔다. 냄새를 맡고 모여든 늑대들은 날카로운 창을 핥기 시작하고 추운 날씨에 혀가 마비되어 죽어버린다.

사냥의 명수였던 동물의 말로 치고는 어처구니가 없다. 바람은 살이 에일 정도로 차가웠지만 계속되는 일과였을 텐데 냄새가 풍겨왔다. 오늘은 어쩐지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느긋해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은 아닌지. 끝없는 얼음바다에서 펼쳐진 일말의 사건에서 은연 중 길들여지는 타성의 배후를 생각해 본 것이다.

처음에는 예의 사냥을 나왔을 거다. 냄새를 맡으면서 갑자기 무기력해진 것일까.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는 의욕이 넘치고 창의적이었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시들해진다. 억지로라도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야 되는 이유다.

열정과 패기로 나갈 경우 시행착오가 생겨도 정신 건강에는 바람직할 수 있다. 위대하고 평범한 차이는 얼마나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늑대의 죽음은 에스키모 인들의 속임수에 의한 타살이었으나 외부적 요인은 극히 적고 나머지는 대부분 일을 자초한 경우이다. 반복과 되풀이는 편하지만 고정관념 때문에 독창성과 신선미를 잃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아울러 돌아본다.

글을 쓰는 동안도 가끔 그런 느낌일 때가 있다. 보통은 문맥을 잡아 주제를 설정하고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지만 치우치다 보면 뚜렷한 발상도 없이 진부한 내용이 될 수 있다. 독특한 안목으로 소재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인생 또한 모든 걸 쏟아 붓고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만 그런 사람에게 의외로 많이 나타난다니 집중해서 파고들 경우 나무는 보면서 숲은 볼 수 없는 괴리에 빠지게 된다.

북극의 살인적인 추위는 녹록치 않은 시련이고 우리 삶의 여파 또한 간단치 않으나 그럴수록 삶의 고삐를 죄어야겠다. 냄새를 맡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것도 아무런 의혹을 품지 않은 까닭이었다. 귀 끝이 아리도록 찬바람과 매서운 눈보라는 허구한 날 지루할 수 있지만 늑대의 소망이고 생활이었는데 잠깐 잊어 버렸다.

며칠 동안 겨울날씨 같지 않게 따스하다. 추워지면 활동이 힘들어진다. 포근한 게 나쁠 것은 없지만 타성이 될 게 걱정이다. 폭설과 한파 속에서 단련될 때라야 진정 겨울인데 한동안 푹한 날씨로 추위에 대한 내성이 떨어질 것도 염려스럽다. 예기치 못한 추위가 닥쳐올 수 있다면 매일 매일 온화한 날씨를 좋아할 것만은 아니었다.

눈 속에서 생짜로 죽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 문득 정신을 차렸을 거다. 잠깐 편해지다 보니 얼어붙은 몸이 노곤해지고 미적댔을 게 분명하다. 상황을 깨닫고 일어서려도 얼음바다를 뚫고 나갈 일이 아득해진 것일까. 광활한 빙원과 설경에 묻혀 살던 에스키모인들도 가끔은 따스한 아랫목이 생각났을 테니 그 속내와 어지간했다.

하기야 그래서 늑대들 특유의 안이한 근성을 정확히 꿰뚫었을 것이다. 피 묻은 나무 창끝을 핥다가 죽은 것은 삶의 무대가 얼음판인 것을 잊고 잠시 안락에 빠진 결과이다. 온통 칼바람과 빙산과 눈더미 뿐이지만 그 하늘은 얼음 바다보다 푸르고 바다는 하늘보다 투명했다. 한겨울 차가운 얼음바다는 극 지방의 혹한 속에서 더더욱 빛나고 푸르렀을 텐데 춥다고 움츠리는 동안 아득히 잊어버렸을 거다.

눈 감으면 얼음과 눈과 바람뿐이었던 극 지방 특유의 정경이 설렌다. 대기 중에 떠 있는 눈과 얼음 알갱이가 굴절되면서 아름다운 무지개로 반짝였다. 남극을 탐험했던 아문센과 스코트 대령도 보았음직한 풍경이나 노르웨이 태생인 아문센과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트는 출발하는 양상부터가 달랐다.

아문센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입고 스코트는 합성섬유로 된 옷을 입었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방한복이었을 텐데 의외로 무겁고 습기가 많아서 스코트 일행을 괴롭혔다고 한다. 반면 아문센이 입은 털옷은 가볍고 따뜻해서 남극의 추위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스키를 타기도 편했단다. 단순한 추측이고 그 때문일 리는 없겠지만 아문센은 성공했고 스코트 일행은 동사하고 말았다.

탐험에 필요한 장비도 문제였을 것이나 영하 60℃ 이하가 되면 인조로 된 섬유는 부스러지고 동물가죽이나 털로 된 천연섬유만 견딘다니 놀랍다. 보온성이 훨씬 좋다는 뜻인데 제 아무리 방한복도 동물의 가죽옷은 따르지 못했나 보다. 우선은 아주 추운 곳이고 아문센 일행의 털옷이 한몫을 했다면 늑대의 가죽옷도 있었을 테지.

늑대에게 추위는 결국 2차적 문제 아니었을까. 춥고 힘들어도 하늘을 보면 소망이 있었을 거다. 거기 떠도는 구름과 날아가는 새가 보이고 뺨에 닿는 바람이 상쾌하다고 느끼는 순간 처방은 나왔다. 죽어가면서 그제야 북극의 낙원을 생각했겠지. 햇볕이 들고 얼음판에 무지개가 그어지는 것도 환상일 텐데 안락을 추구하는 동안 까맣게 멀어졌다.

늑대에게 북극은 꿈의 반경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설경은 늑대의 하늘만치나 푸르렀다. 모질게 추운 북극이 그 삶의 근거지라는 것도 늑대에게 추위는 오히려 풍경이었음을 뜻한다. 공교롭게도 죽음을 맞은 것은 살인적 한파가 아닌 편히 쉴 때였다. 우리 살 동안도 그럴 때가 문제라면 점검이 필요하다. 푸르스름할 정도로 새하얀 얼음바다의 메시지를 보는 것 같다.

늑대는 좀 더 멀리 바라봤어야 했다. 변화와 충격만이 돌파구라는 뜻이지만 정작 쉽지는 않다. 리듬은 흩어져도 물갈이가 아니면 깨끗해질 수 없다. 늑대의 하늘과 바다 역시 푸르지만은 않았으나 과감히 뚫고 나가면서 희망찬 무대로 바뀌지 않았을까. 차가운 얼음과 눈보라야말로 그 생존방식이었다. 시간을 점검하면서 내일로 가는 최선의 길이었던 것.

올해는 나로서도 특별한 한 해였으면 좋겠다. 우리 늘 새해 첫날의 결심과는 달리 조금씩 시들해지고 그럴 때마다 절망하지만 그 시행착오야말로 성공의 모태가 된다. 혹 뜻대로 되지 않을지언정 어려움이 있어야 성공도 있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고, 겨울이 추워야 이듬해 봄 나뭇잎도 푸르다. 북극의 늑대로서는 얼음에 뒤덮인 빙원을 향해 갈 때가 최고의 소망이고 꿈이었던 것처럼……

/ 이정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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