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어쩌면 뜻하지 않은 일의 연속이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듯싶은 어머니가 콩팥 기능이 쇠진하여 입맛을 잃고 치매기운까지 얻은 것은 전혀 상상하지도 않은 일이다. 외동이어서 결혼이 쉽지 않을 듯 했는데 착한 사위감을 데리고 나타나더니, 우리내외 바람대로 성당에서 혼인미사로 딸이 짝을 정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무슨 복에 바로 아기가 생겨 작년 11월에 건강한 손녀를 낳아 온 가족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누구보다 기뻐하신 것은 바로 어머니다. 건강이 나빠져 큰 즐거움이 없는데 증손녀 사진만 보아도 “예쁘다”감탄하시며 함박 미소를 지으신다. 어느새 365일이 지나 돌잔치를 열게 되다니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잔치하면 집에서 전통적으로 하는 떡을 넉넉히 해서 친지와 이웃들과 나눠먹으려 했는데 딸 내외 생각은 달랐다. 첫 자식이고 남부럽지 않게 돌잔치를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청주시내 축하행사 위주로 지어진 ‘더케이 인 성균관홀’을 예약한다는 것이다. 예복이랄까 딸 내외와 손녀가 같은 디자인으로 옷을 맞추어 입어 축하분위기가 업 되고 사위 직장엔 미리 떡을 해서 나눠먹기로 한 것이다. 당일 홀로 사는 신랑누이를 모시고 성균관홀에 찾아가니 친정 여동생들과 조카딸들이 먼저 와 있었다. 문제는 집안에서만 지내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시끄러우니 손녀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간신히 재워놓았다는 것이다. 서울, 경북, 강원도에서 많은 축하객이 모여들었다. 축하식을 열기 전에 오찬을 먼저 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아직 말 못하는 어린 것이 잠을 깨지 않게 조심조심 밥을 먹으면서도 어른들이 더욱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 세상 하나뿐인 새 생명의 탄생 그 자체가 움직이는 예술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딸애가 살며시 아기를 안고 들어온다. 놀라운 것은 집에 사 놓았던 큰 오픈카를 가져와 입장을 하려니 다시 울음보를 터뜨린다.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집에서 아빠가 끌어주면 마냥 좋았는데 사람 되기가 이리 힘드는가!’

그래도 기특하게도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입장했고 무대 위로 올라 딸 내외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일차적으로 자궁을 열고 나오고 간신히 기더니 차츰 앉고 서고 마침내 걷기까지, 성장일기를 동영상으로 하얀 스크린에 크게 보여주니 모든 순간이 어여쁘고 감동이다. 모두 목을 빼고 고대하는 순서는 역시 돌잡이 순서이다. 옛날에도 첫돌에 연필· 책· 돈· 떡· 실· 붓· 공책 등으로 돌상을 차리고 아기에게 상 위에 놓인 물건을 마음대로 골라잡게 해서 어느 것을 고르는가로 그 아이의 장래 운명을 알아보는 의례가 궁중에서도 있었다한다. 현대판 돌잡이는 어떻게 진행하나 예서제서 궁금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회자가 아빠한테 무엇을 집으면 좋을까 물어보니 돈이라 하여 모두 웃었다. 엄마는 판사봉을 가리켰는데 손녀는 뜻밖에도 청진기를 선택! 병원에서 온 사위 동료들이 환호성을 올린다. 오늘날엔 생활상을 반영하여 ‘컴퓨터 마우스나 마이크, 골프공’ 등이 오르기도 한단다. 어서 자라 여의사가 되어 아픈 병 잘 고치면 그것도 좋은 일! 청진기를 맞춘 축하객에게 추첨으로 선물을 주고 손녀를 위한 덕담도 하니 다들 흐뭇하다. 기대보다 따듯한 진행을 한 사회자에게 팁 오만 냥을 건네주고 내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여러분이 천사를 보고 싶다면 오늘 첫돌을 맞은 저의 손녀를 보시면 됩니다. 저는 김하율 스텔라를 하느님이 손잡고 지금 우리 앞에 데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큰 박수로 오늘의 천사를 환영한다. 나의 선물은 금목걸이 세 돈으로 남편이 손녀의 목에 걸어 주었다. 그날 축하식이 손녀딸에게 늘 포근한 기억이 되도록 ‘고향의 봄’을 다함께 합창하였다.

조용히 되돌아보니 이 성스런 탄생을 제일 먼저 축하해주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지난 7월 6일 주교좌성당 최광조 신부 주례로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유아세례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스텔라는 바다의 별(라틴어: Stella Maris)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호칭 가운데 하나이다. 이 칭호는 세상의 즐거움이라는 ‘바다’에서 신앙생활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인도하는 ‘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한다. 손녀를 만날 때마다 귀에 대고 속삭인다. ‘김하율 스텔라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아가입니다. 하느님의 돌봄과 부모의 기도로 가장 지혜롭기를 바랍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한 두 젊은이 장영운 로사와 김동철 프란치스코도 새삼 고맙고 신비스런 존재로 곁에 있다. 난 그들과 높은 산도 넘고 파도치는 바다도 함께 건너야 한다. 생의 매일이란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와도 같은 것. 손녀의 앞길에 매일 별이 떠서 빛나주기를 첫돌을 맞아 소망해본다.

아니다. 2019년 첫돌을 맞이한 김.스텔라의 동기 천사들이 한결같이 씩씩하게 자라서 하늘 평화까지 이루어내길 감히 기도하는 것이다. 딸애는 귀한 발걸음 해준 축하객에게 기념품삼아 소금을 조그만 보자기에 싸서 들려주었다. 내 스스로 먼저 소금이 되어야겠다는 하늘 천사의 귀한 메시지를 안아본 11월 이다.

 

/ 박종순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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