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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어름에서
초겨울 어름에서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9.11.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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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를 무쳤다. 민들레는 양념장에 재우고 쑥은 들기름에 일구었다. 맛나다. 독특한 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가을이 뽀얗게 피는 식탁에서 동무들과 보낸 시간이 모처럼 쏠쏠하다. 이듬나라에서 꺼낸 추억 때문일까.

초겨울에 웬 씀바귀나물이냐고 질문이 쏟아졌다. 냉이도 봄나물인줄만 알았더니 민들레와 쑥은 또 어디서 캐 왔느냐는 의혹도 빗발친다. 구태여 설명보다는 웃음으로 넘겼다. 가을에도 봄나물은 있지만 이듬나라 얘기까지는 몰랐을 거다. 초벌요기가 끝난 뒤 내력을 일장 설파했던 것.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처럼 별도로 독립국은 아니다. 서리거둠 반도에 생겼다가 나그네새처럼 사라지는 특별한 나라. 된내기에 서리 까마귀 울 때는 비상시국인데 살짝 살짝 볕들면서 앙증맞은 나물이 돋는다. 하늘이 말개지면 서리가 내릴 거라고 머릿수건 동이신 채 재우쳐 가던 어머님 나라는 또 박꽃 필 때마다 봉긋하게 자라곤 했다.

다 저녁 때 와서는 툇마루에 와르르 쏟으셨다. 소쿠리를 쳐들면 동부 꼬투리와 호박잎이 가득했다. 풋 동부로는 개떡을 찌고 얼기설기 호박잎은 콩가루 묻혀 된장국 끓이고 얼갈이 쑥갓은 겉절이를 무치셨다. 알뜰히 가을걷이에 푸성귀라곤 귀할 때다. 맛이 각별할 수밖에 없고 거취가 궁금하다.

내 좋아하는 동화 속 어린왕자는 저 혼자 묵는 별 있다더니 늦가을이면 어머니도 이듬나라에 기거하셨다. 초겨울이 되고 눈이 쌓이면 금방 사라질 텐데도 그래서 애착이 가는 듯했다. 어쩌다 생각나기는 해도 희망의 아지트다. 내처 살지는 않아도 찬바람 가랑비에 짬짬 푸성귀가 자라듯 어머니의 제 2 공간도 그렇게 뿌리박았다.

된내기에 허옇게 뜨지만 금방 또 파릇해진다. 두 번 세 번 이듬으로 나온 것 위에 또 후렴이다. 보름 뒤에는 사라져도 서리거둠 풍경은 흐벅지다. 그냥 두면 얼기 직전인 초겨울 조금씩 아껴먹는 운치를 배운다. 이듬나라 건국이념도 된내기 초록이었다.

어머님의 이듬나라를 거슬러 가면 초가을 아래뜸이다. 뜰에는 멍석이 펼쳐지고 콩단 들깻단을 널었다. 방에서 들으면 알갱이가 멋대로 달아난다. 마루 밑에 떨어지고 샘가에도 흩어졌다. 한 두 개라면 들키지 않는데 서너 개씩 터질 때는 방안에까지 야단스럽다. 서슬에 놀라 나오면 신발 속에까지 들었다. 콩을 밟으면서 쭐쩍 미끄러졌다. 어머님 손에 초벌 빠진 꼬투리는 연신 틀어지고 쨍쨍한 볕에 사달이 났다.

행랑채 시렁에는 곶감을 꿰어 말렸다. 볕 좋은 날 하루 감을 따서 일부는 홍시를 안치고 일부는 과도로 저며 해바라기 중이다. 새들새들 물기 걷히면서 발그름한 속살이 비쳤다. 방구리에는 쭈글쭈글 마른 대추가 들고 소쿠리에는 박고지 호박고지가 그득했다.

가으내 토란대며 고구마 줄기 벗겨 말리시더니 발 디딜 틈이 없다. 배배 틀어지도록 마르면 종이봉투에 담았다. 오지독 깊이 간수했다가 꺼내면 겨우내 요긴한 찬거리였다. 햇살은 얇아지고 얼마 후 설핏해지면 바지랑대에 잠자리 함빡 날아들던 가을날이다.

추억의 무게가 실려 온다. 눈감으면 까무룩 멀어지던 이듬나라 골짜기. 허구한 날 서리 거둠에 지칠 때면 그 새 초겨울이고 날씨도 잠포록했다. 바람 한자락 잡고 돌아가면 외딴 집에 철적은 달맞이꽃이 피었다. 붉은 열매 가득한 마가목도 이듬나라 꽃이다. 쓸쓸한 가을 끝물인데도 냇물까지 물들어 간다. 등등했던 된내기가 너누룩해지면서 자투리 풍경은 별천지다. 낙엽송은 황금차일을 벌여놓고 질경이는 초록을 잔뜩 풀어놓았다. 잿빛 들판에서 초록을 재생하듯 그 자리만 푸르렀는데.

떨고 있는 민들레 달맞이도 한 편 감동이었지. 초록에도 이삭은 있구나. 바람이 줄치는 언덕에 돋아난 것은 영롱한 꿈이었다. 잡지는 못할 거라도 겨울에도 푸른 초록이 묻어난다. 폭설에 된바람에도 해마다 깔축없이 덧쌓인 진초록 성이었다. 세상 어디고 없을 유토피아적 존재이다. 내 삶의 텃밭에도 마흔 아홉 번의 이듬나라가 불시착했기 때문에.

휑뎅그렁한 텃밭에도 이듬 자랄 뭔가는 있다. 보통 땅덩어리처럼 발을 붙이고 살지는 않아도 밤에는 별이 뜨고 달빛이 고왔다. 서리와 된내기로 며칠 안 되는 날이 귀하게 느껴지듯 허구한 날 불행이라 알차다. 한때는 철새처럼 집시처럼 생각했지만 시월 말에 한번 뜨는 보름 안팎 영토는 풍경이다. 기러기발 틈으로 군청색 하늘도 만추의 서정이다. 하늘이 까맣게 날아가더니 엊그제는 마지막 행렬인 듯 예닐곱 마리 뿐이다. 모두들 떠난 후였지만 잠깐 이듬나라에서 쉴 것 같은 상상도 늦가을 다 저녁때 해거름이다.

바람이 쌀랑하다. 동무를 배웅하고 오는 길에 늦가을 소품을 꺾어 왔다. 솔가지에 억새 묶음을 덧대고 들찔레를 얹었다. 방 안에 가을이 한껏 예쁘다. 세상은 가을은 그렇게 추억을 만든다. 떨어지는 단풍도 이듬나라 전설을 엮는다. 썰렁해도 잠깐 견디면 봄이 되고 꽃을 피우듯 이듬나라 축제에 동참하다 보면 아련한 느낌이었는데.

가끔 깻송이 같은 행복이 동티날 것처럼 두렵다. 오래 전에 침몰했다는 아틀란티스니 무 대륙 레무리아 대륙도 있다. 연유는 밝혀진 바 없지만 나는 물려받은 땅인데 괜한 걱정이지 싶다. 서리거둠이 아니어도 새삼 돌아보곤 했는데 가라앉으면 어쩌나. 존재여부가 불투명해도 유감일 수 있다. 확실히 믿는 만큼 용납하기 어렵다.

영토라고 할 것도 없이 양쪽 건물 사이에 낀 볼기짝만한 땅이지만 잠깐 잠깐 풍경은 잊지 못할 거였다. 여름에는 흔했어도 늦가을 접어들 때는 앙상했는데 이듬으로 나오면서 다시금 흐벅지다. 상추니 아욱도 밋밋한 대궁에 달려 있지만 불행 속에 깃드는 수내기 같은 행복을 잡고 싶다. 오늘따라 늦가을비가 시원한 것도 한참 내리다가 그친 웃비 때문이었던 것처럼.

옹색한 텃밭에 늦사리 작물이라 적다고만 하면 늦가을 풍요는 바랄 수 없다. 혹 그까짓 것 할지 모르나 많다고 많지 않고 적다고 적지 않은 이듬나라 공식이다. 가끔은 많지 않은 서리거둠 채소가 풍성한 식단을 만드는 것처럼 행복도 불행의 밭에서 이듬 나고 자란다.

꽃밭의 잡초는 거슬리되 잡초 속의 꽃은 뽑아낼 것도 없이 예쁘고 시적이다. 별이 어둠속에서 빛나듯 행복의 바탕화면도 불행이다. 내 삶의 텃밭도 가랑비에 찬바람이지만 된내기 속의 민들레와 달맞이꽃처럼 이듬으로 피는 행복을 추구한다. 어쩌다 먹은, 그것도 아주 잠깐 맛 본 이듬나라 푸성귀 때문에 따스해지던 그 느낌 오래 간직하고 싶다.

심란할 때는 잠깐 망명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찾는 사람도 없고 외로울 것 같지만 욕심을 접고 숙이면 예쁘게 살 수 있는 나라다. 가난해도 비단가난으로 여길 수 있고 그럴수록 기와집 짓는 품성이면 더욱 좋겠다. 탐욕스러운 사람 눈에는 띄지도 않을 테니 애써 지킬 것도 없다. 누구에게 뽐을 내거나 주눅들 것도 아니고 분수에 맞춰 살기에는 아주 적정한 나라.

내 명의로 된 지상 최대의 낙원은 거기밖에 없었다. 휴가철 다녀오는 별장도 굉장한데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나라를 독차지했다. 바다 가운데 섬도 전세 내기는 복잡한데 금은보화로도 살 수 없는 재산 목록 1호에 하늘도 아닌 데서 보는 인생 천국이다.

 

/ 이정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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