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이 사르락 사르락 허공의 창을 닦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청소하기라도 하듯.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 나뭇잎의 하강식을 보며 출근길에 올랐다. 트렌치코트로 내 몸을 다 감춘 채 은행잎이 싸락눈처럼 쌓인 횡단보도에 섰다. 바람은 이리 저리 잎들을 몰고 다니고 나도 쓸려다니는 잎들처럼 세월에 쓸려 이 가을까지 흘러왔다. 이른 아침 신호등에 멈춰 문득 옆을 쳐다봤다. 옆에 서 있는 가을날처럼 스산한 부녀가 설핏설핏 내 시선을 베어갔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듯한 소녀가 남자의 팔에 매달려 나를 보고 있다. 소녀는 웃는 듯 우는 듯 일그러진 얼굴을 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표정을 긁어서 모아놓은 듯한 얼굴은 구겨졌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쪽 발은 살짝 들려 흔들리고 있었고, 손가락으로는 뒹구는 은행잎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는 딸의 얼굴에 자신의 표정을 모두 위임한 듯 텅 빈 논바닥 같은 얼굴로 우듬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를 부축하여 어디론가 가는 듯 아침 속에 서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신호등이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도로를 건너면서도 그들 부녀에게 신경이 자꾸 쏠렸다. 소녀는 나팔꽃 줄기처럼 팔을 배배 꼰 채 한발 한발 땅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온몸을 갈대처럼 흔들면서 하얀 선이 그려진 횡단보도를 마치 사다리라도 오르는 듯 위태롭게 건너고 있었다. 그 옆에 바지랑대처럼 붙어 펄럭이는 소녀를 부축하는 마늘종처럼 깡마른 남자는 여전히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선뜻 도와주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길을 걸었다. 울컥이며 걷는 소녀의 걸음걸이에 마음이 쓰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도 나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채 신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신호등은 이미 빨간 불로 넘어가고 그들은 꼼짝 못하고 도로에 서 있었다.

마치 그물에 걸린 새처럼 횡단보도에 그들이 갇혀 있었다. 차들은 그들의 행방쯤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어떤 차는 경적을 울리며 갇힌 그들을 한층 긴장시켰다. 갇힌 시간 속에서도 소녀는 손가락으로 나뭇잎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그물을 빠져 나오려 날개를 퍼덕이는 새처럼. 남자는 흙빛이 된 얼굴로 소녀가 다칠세라 그녀의 한쪽 팔을 꼭 잡고 있었다.

신호등이 한차례 더 색깔을 바꾸고 그들은 간신히 길을 건넜다. 잠시 후 그들 앞에 나뭇잎을 바퀴로 가르며 노란 스쿨버스가 멈췄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 학교 버스였다. 소녀를 태운 버스는 길게 누운 도로를 지우며 쌩하니 달려갔다. 홀로 된 남자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행잎을 찬찬히 보더니 한 잎 주워 한참을 바라보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골목에 시선을 떼어주다 나도 은행잎을 주워 가만히 살펴본다. 남자는 은행잎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노란 잎 위로 수없이 많은 잎맥이 길처럼 깊게 패어있다. 찾을 수 없었던 길들이 작은 잎 속에 가득 펼쳐진다. 내가 건널 수 없었던 수많았던 길들을 눈으로 건너본다. 생의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날들을 떠올려 본다. 지금 나는 제대로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아직도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나는 길 위에 서성인다. 저 많은 길들은 누구의 길일까. 왜 나는 저 곧게 뻗은 길에 발을 딛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인가. 얼마나 더 길을 건너야 길을 다 건널 수 있을까.

길 위에 바람이 분다. 은행잎이 펄럭이며 뒹군다. 길 잃은 아침이 주춤거리며 도로 위에서 나부낀다.

 

/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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