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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미학
소리의 미학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9.10.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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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무심천변으로 산책을 간다. 우선 바람이 시원해 낮의 따가움도 식혀 주지만 무엇보다도 물이 흘러가면서 내는 다양한 소리가 듣고 싶기 때문이다. 조용하다가 갑자기 물 흐르는 소리가 커지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지며 주변을 세심히 살피게 된다. 걷다보면 풀숲에서는 작은 곤충들의 울음 또한 아름답게 들려온다. 걸음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소리는 더욱 청아하다. 이처럼 자연의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간간이 크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음이 되어 산보의 마음을 흩트리고 무겁게 한다. 내가 낮을 보내고 밤에 무심천을 찾는 것도 자동차소리나 개 짖는 소리 등 모든 소음에서 멀어져 자연 속에 들기를 원하는 때문이다. 소음을 불평하자 동행하는 남편이 모르는 소리 한다고 ‘당신 목소리는 내겐 백색 소음’이란다. 처음 듣는 용어에 귀가 솔깃해온다.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인데 이런 소음 중에도 좋은 소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다는 것이다. 백색음이란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들리는 백색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 친근한 소리인 것이다. 이들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가 비록 소음으로 들려올지라도 음향 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게 된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하니 그럴 듯도 하다. 게다가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니 다행한 경우이다.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인 소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여름에 해변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노라면 불어오는 해풍에 시원하고 쾌활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의해 깊은 잠을 자게 된다고 한다. 이는 파도소리에 숨겨져 있는 백색소음이 인간 뇌파의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하기 때문이란다. 이웃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CD에 수록해 팔고 있는데,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때 숙면 유발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하니 짐작이 되는 현상이다.

한 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뇌파반응을 검사해 봤다. 피 실험자에게 백색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다소 감소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이렇듯 듣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소음이라도 백색소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소리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사회 요소요소에 백색소음의 수요가 점차 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남편과 소리 이야기로 구천보를 걷다보니 달님은 산 너머로 숨고 별들이 멀리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다. 소음을 포함하여 아마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고 그래도 조용하면 또 불안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먼 산 계곡으로부터 흘러 모인 냇물이 여울을 지나는지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왠지 가슴이 후련하다. 이미 지난 봄 논을 가득 채우던 개구리 소리와 여름 창창한 매미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은 소리와 함께 깃든 추억이 더욱 생생해오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10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는가 묻고 있다. 백색 소음을 지나 영혼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꽃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소리는 생의 흐름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물체의 진동이나 공기의 흐름에 의하여 발생하는 파동의 하나라고 하지만 소리에 매료되어 꿈을 꾸거나 행복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귓가에 속삭이는 연인의 목소리나 진한 숨소리가 그것이다. 마치 생명수와 같으니 그 소리 연이어 사랑스럽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가 따듯하고 곱다면 절로 그 사람에게 다가서게 된다. 나도 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소리가 모여 꽃이 피어나듯이 사람의 얼굴에도 몸짓에도 소리꽃이 핀다.

 

/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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