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둘러봐도 ‘산’이 없는 곳이 없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 지역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산성’이 발달되었다. 중부 이남의 지역에만 일천 이백 여개의 산성 터가 남아있다. 가히 ‘산성의 나라’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산성은 평상시에 곡식과 무기를 비축하고 적이 침입하면 평지의 주민들이 농성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됐다. 일종의 군수창고인 셈이다. 주변국들의 침략이 많았고 삼국시대까지는 각 나라별로 격렬하게 전쟁을 하며 대부분의 지역에는 산성이 건설되었고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산성은 산세를 따라 목책이나 토루, 석축을 둘러 아군이 적을 바라보며 방어하려는 의도에서 축조되었다. 아무래도 공성전의 최대 장점은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산의 경사면이나 절벽을 이용하여 방어시설을 짓기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과 물자를 최대한 아낄 수가 있으며 유사시 지형과 전략의 유리함을 이용할 수 있다.

기동력을 앞세워 세계를 제패한 몽골이 유독 우리나라에 와서 고전한 이유도 바로 산성에 있다. 초원에서 말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작전을 사용한 몽골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험준한 지역과 가파른 산을 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점령국의 왕족을 멸하고 직접 통치했던 몽골은 유일하게 고려의 왕조를 인정해준다. 이 또한 몽골을 괴롭혔던 산성이 한 몫 했으리라 유추한다.

우리나라의 산성은 전략적인 요충지가 많아 주로 경관이 훌륭한 곳에 많이 있다. 특히 충북의 산성은 석축기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사적 제235호로 지정된 보은의 삼년산성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문화재이자 관광지로도 각광 받고 있다으며

470년 신라 자비왕 13년에 지어진 삼년산성은 대전, 청주, 상주, 영동이 속한 곳에 위치한 최전방 기지였다. 과거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인 지역이라 전해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장정 3000명을 동원하여 개축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이 있는 곳이 오정산이라 오정산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성을 다 쌓는 데 3년이 걸렸다 해서 삼년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라의 통일시대를 이끈 태종무열왕이 당나라의 사신을 맞이한 곳이며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왕 견훤을 치려다가 실패한 곳이다. 산성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삼년산성을 거닐거나 오는 10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대추축제 또한 가족들과 나들이 가기 좋은 곳이다.

 

/ 이기수 충북 SNS서포터즈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