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중에서 특별한 이름은 너도밤나무 아닐까. 그렇게 불러 준 것 또한 밤나무였겠지? 너도밤나무라는 것은 나도 밤나무라는 뜻을 나타냈거든. 진짜 밤나무는 아니고 유래가 있었다.

옛날 어떤 스님이 한 아이를 보고는 호랑이에게 죽을 팔자라고, 살려면 밤나무 1,000그루를 심으라고 했다지. 놀란 부모님은 밤나무를 심고는 열심히 가꾸었다. 그리고 얼마 후 스님이 찾아와서는 하나하나 세더니 998그루밖에 되지 않는다고 역정을 냈다.

부모님은 그럴 리 없다고, 분명 1,000그루를 심었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2그루 부족했다. 그러자 약속을 어겼다고 으르렁대는 호랑이. 순간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되받았다. 호랑이는,“그래도 한 그루 모자라지 않느냐”고 기세등등했지만 넉살좋은 이 친구 곁에 있는 나무를 보고는“너도 밤나무잖아”라고 귀엣말을 했다.

밤나무도 아니면서 능청에 잠자코 있는 나무를 보고는 너도밤나무 아니냐고 꼬드기니 호랑이는 도망가고 아이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얘기 한 토막. 그때부터 너도나도 밤나무가 나왔을 거다. 둘은 안성맞춤 친구였다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밤나무 나도 밤나무 하다 보니 그 말이 그 말 같고 어쩐지 헷갈린다. 나도 밤나무라고 외친 녀석도 그렇고 너도 밤나무 아니냐는 통에 갑자기 진짜 반열에 오른 너도밤나무 또한 마찬가지이다. 둘 다 본의 아니게 진짜 밤나무로 급상승하면서 한 사람 생명을 살리게 된 거지만 너도 나도 어투는 생짜로 우겨대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밉상은 아니었으니 연유가 뭘까.

나도니 너도는 엇비슷하게 보일 경우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나도 풍란이니 나도강아지풀, 나도 억새니 라는 식이다. 그 외에 너도부추, 너도바람꽃, 너도양지꽃도 초록은 같은 색이고 유유상종에 동무하자는 뜻인데, 별반 닮지도 않았으면서 배짱 좋게 나섰다.

사실이라면 거침없이 괄괄하고 너도밤나무는 새침데기였겠지? 갑자기 동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나설 때는 어? 하고 놀랐을 텐데 뒤미처 너도밤나무라고 하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너도밤나무는 그나마도 같은 참나무과라 어지간했지만 나도밤나무는 전혀 달랐다. 나도밤나무라고 했던 녀석도 알고는 있었겠지만 워낙 다급했다.

익살꾸러기 왈가닥에 제멋대로지만 위급할 때 기지를 보면 추진력 하나는 대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산중의 왕 호랑이가, 점찍어둔 먹잇감을 포기한 채 달아날 리가 없다. 진짜 밤나무라면 그렇게 강조할 이유도 없으나 조금만 지체했어도 호랑이는 본색을 드러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도밤나무라고 선뜻 나선 용기와 너도밤나무잖아 라고 부추겼던 걸 생각하면 갑자기 따뜻해진다. 호환을 피한 그 어린아이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였고, 율곡이 다름 아닌 밤 골짜기라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특별히 나도밤나무가 너도 밤나무잖아라고 능청은 거짓말이어도 한 사람의 목숨 때문에 두 팔 걷어붙였다. 너도밤나무가 나섰더라면 좀 더 닮은 너도밤나무가 나도밤나무로 되었을 텐데 나도나 너도나 오십 보 백 보이다. 아무리 봐도 전설 같은 애기에 진짜 밤나무가 보면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무리에 끼워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얼마 전 플롯 앙상블에 들어가려고 전화로 알아볼 때였다. 이모저모 인적사항과 특별히 전공 여부를 묻는다. 말투만 봐도 뜨악한 표정에 순간 잘못 걸었구나 싶었다. 그림이나 서예 등은 혹 수준 차이가 나도 별반 문제될 게 없지만 음악은 한 사람만 삐끗해도 화음이 틀어진다. 결국 전공하지 않고서는 입회가 불가능한데 깜빡 잊었던 거다. 두 말 않고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은 좀 그랬다.

구태여 고집을 피웠어도“미안하지만 규칙상 어쩔 수가 없네요. 다른 데 알아보세요”라고도 할 수 있다. 전공도 하지 않은 주제에 어딜 들어오겠느냐는 투였다. 식물조차도 어지간할 때는 나도니 너도니 엉너리치면서 같은 레벨로 인정해 준다. 아무리 프로급 베테랑도 설익은 아마추어 시절이 있었다. 모든 개구리는 한때 올챙이였다. 그것을 알아야만 진정한 프로다.

그리고 말이야 바른 대로 저가 음악은 뛰어난지 몰라도 그게 세상 전부는 아닐 테고 남들 또한 뛰어난 점은 얼마든지 있다. 나무를 탈 때는 원숭이가 으뜸이고 땅을 팔 때는 두더지만한 게 없다. 누구든지 프로급 강점은 있는데 분야가 다를 뿐이다. 진정한 프로는 그것까지 인정하기 때문에 함부로 굴지 않는다.

더불어 경멸하는 말투라도 가끔은 약이 된다. 이후로 자칭 음대졸업생이라는 사람 때문에 열을 받고는 무지무지 연습 끝에 실력이 다소 늘었다. 자극도 필요하구나 싶다가도 나 역시 그렇게 남을 멸시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았다. 나만 못한 실력이 있을까마는 마음 자세는 그래야 될 거라는 생각이다. 다소곳한 품성과 실력은 바늘과 실처럼 함께 간다.

나도니 너도는 들풀 혹은 들꽃에 많다. 들판이나 길가 등 가리지 않고 필지언정 아무렇게나 피지는 않는다. 소박한 중에도 나름대로는 예쁜 꽃이다. 나도 풍란이니 나도강아지풀, 나도 억새니, 너도바람꽃 등은 서로 고만고만해서 자기들 패에 끼워 줄 수 있다. 이름대로라면 착각할 만치 서로 고만고만 닮았다. 누가 봐도 어울릴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홍도에 자생하는 풍란은 나도풍란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다.“그래, 너도 품격을 높이면 진짜 못지않을 테니 열심히 살아 봐”라고 했을까. 빛깔이 달라질 리도 없고 향기 또한 그대로겠지만 어디서든 예쁘게 피려는 마음이면 꽃으로서는 최고 품격이다.

그러나 닮았다 해도 어딘가 세밀해 보이지 않고 엉성한 느낌은 속일 수 없다. 진짜 같은 경우 특유의 향기가 있고 좀 더 차분한 뉘앙스였으나 품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것을 보면 다소 부족해도 애써 닮으려는 마음가짐이 돋보일 테고 품성을 우선으로 쳐 줄 수 있다.

특별히 미쁜 것은 진짜 풍란이 나도풍란이라고 주장하는 들풀을 이윽히 바라보며 부족한대로 인정해 주는 마음 아니었을까. 진정 아름다운 화초는 그 지닌 품위로 최종 드러난다. 정식화초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 받은 들꽃과,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한 살이에서 어우렁더우렁 특별한 삶을 보는 것이다.

 

/ 수필가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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