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옥여교사 기념관
김재옥여교사 기념관

 

주말에 음성군에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다 인근의 충주시 신니면을 들렀다. 지난 6월이 마침 호국보훈의 달이었고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7월 7일, 이곳에서 유명한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동락리 전투’다.

신니면 문락리에는 ‘동락 전승비’가 있는데 전승비가 위치한 이곳은 과거에는 음성군 신니면 동락리였다가 지금은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된 곳이다. 동락전투 전승비는 지난 2016년 7월 7일에 동락전투로 불리우는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동락전투의 의의는 우리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6.25전쟁 초기에 북한군을 상대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전투기 때문이다.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남침해오는 북한을 저지하기 위해 2대대를 중심으로 국군 6사단 7연대가 집결한다. 한 여교사의 제보를 바탕이 단초가 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를 통해 1개 연대 이상 규모를 격멸시킨 전과를 올린 한국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뒀다.

단순히 이긴 게 아니라 처음으로 압승을 거둔 전투였다. 전투의 승리로 국군의 사기를 크게 높여주었으며 1,100여명을 사살하고 97명의 포로를 잡았으며 노획물로 곡사포 12문, 기관총 41정, 권총 및 소총 2 천 여정, 장갑차 3대와 차량 60대 등을 얻었다. 당시 제2대대의 병력은 약 400명이었고 보유한 중화기도 박격포 1문과 중기관총 1정뿐이라는 사실에 비추면 동락리 전투의 전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오죽하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제7연대에 부대표창을 하고 연대의 모든 장병들에게 1계급 특진의 포상을 했다. 전투의 승리로 수세에 몰렸던 우리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동락전투의 숨은 공신은 ‘김재옥 교사’다. 충주 사범학교 1회 졸업생이며 전쟁 당시 동락초등학교로 발령 받은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신참 교사였던 김재옥은 휴교령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키기 위해 피난도 못가고 학교를 지킨다. 그러던 중에 인민군의 침입을 받고는 인민군들에게 국군이 모두 도망갔다고 말하고 몰래 국군에게 가서 집결해있던 인민군들의 정보를 전해주며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침착하게 뒷문으로 빠져나와 4km 이상의 산길을 헤매며 이동 중이던 6사단을 발견하고 자세한 내용을 제보한 것이다.

동락전승비 인근에 있는 동락초등학교에는 전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김재옥 선생의 기념관과 현충탑,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지난 2011년 국가보훈처에서는 김재옥 선생을 ‘호국영웅’으로 선정했으며 이례적으로 선생의 아들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한다.

 

/ 이기수 충북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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