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유교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7월 6일 등재유산 심의를 진행한 결과 우리나라가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개소를 세계유산목록에 올리기로 이날 발표했다. 이번 등재결정으로 한국은 1995년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에 오른 이래 14번째 세계유산을 갖게 됐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북도민이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 또한 감출 수 없다.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충북의 서원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반의 고장, 충절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우리 충북에도 유서 깊고 자랑스러운 서원이 있다. 서원의 종류는 내 관점에서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치된 47개의 서원과 철폐되었다가 다시 지어진 곳이다. 먼저 철폐령에도 존치된 서원은 충청도에 5곳, 충북으로 한정하면 충주의 충렬사와 청주의 표충사 2곳이다.

충주시 단월동에 위치한 사적 제189호인 임충민공 충렬사는 청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인 임경업장군을 기리는 서원이다. 심기원 옥사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군의 원한을 풀어주고 관작을 회복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1727년 사액을 받았다. 세종대왕과 더불어 현군으로 칭송받는 정조가 직접 이곳의 비문을 지어 내렸다.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의 회유와 포섭 시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호국 위인이다. 청주의 표충사는 조선 중기 때 문신인 이봉상‧남연년‧홍림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삼충사로 불리다가 1736년 표충사라는 사액을 받은 곳이다. 영조 4년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고 청주로 침입하자 병마절도사인 이봉상을 비롯한 남연년, 홍림이 끝까지 싸우다가 순절하며 그들이 죽은 뒤 충절을 높이 사 지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청주읍성 북문 안에 사당이 있었다가 1939년 도시계획에 의해 지금의 자리인 수동으로 옮겨진다.

이렇듯 역사라는 줄기에서 보면 유서 깊은 충북의 서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등재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도민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철폐된 서원 중 에서도 조선시대 노론의 성지이자 송시열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괴산의 ‘화양동서원’은 어떤 곳인가. 송시열은 ‘송자’라고 불린 인물이다. 우리나라 학자 중에 유일하게 자(子)를 붙인 인물로 실록에만 3 천번 이상 기록됐으며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화양동서원은 말년에 벼슬에서 물러난 송시열이 화양동에 머물며 글을 읽고 제자를 가르친 곳으로 나라 안 44개에 이르는 송시열 제향의 서원 가운데 으뜸이었다고 전해진다.

세계유산의 등재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고 있는 부동산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충북의 서원 중 유산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선정하고 관리하여 부디 충북의 서원도 세계가 인정하는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한국의 서원에 포함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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