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청주에서 증평으로 이주를 했다. 어머니가 이웃한 시골에 계시니 찾아뵙기 더욱 가깝고, 6년간 학창시절을 함께한 죽마고우들이 반겨준다. 귀소본능으로 이제야 보금자리로 돌아오니 몇 번이고 잘 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삼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상의 슬기로 이루어진 값진 전통과 유적을 간직한 문화의 고장 증평은 전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넉넉한 인심으로 우리의 삶과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망월산에서 올려다보면 거북이형상을 띠고 있는 증평군의 최고봉 좌구산은 나라의 대사를 논하는 밀의(密意)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요. 옛 조상들의 피난처로 유서 깊은 명산이다. 더욱이 좌구산 계곡은 수정같이 맑은 물과 시원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풍광을 고루 지니고 있어 전국에서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증평의 새 명소로 자리함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주변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았는데 연륜이 더할수록 조상의 지혜와 슬기가 깃든 증평지역 문화재는 실로 귀중한 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형문화재로는 증평 광덕사 석조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남하리사지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남하리 석조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 등이 있다.

유교유적으로는 증평읍 대동리의 단군전, 남차리의 청연사·구계서원, 죽리의 평해군 묘, 남하리의 안동김씨 사당, 도안면 노암리의 기성전, 도당리의 정후사가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증평읍 율리 밤티마을 절골에 있는 옛 절터 구석사, 남하2리의 미륵석불입상, 남하3리의 마애삼존석불·삼층석탑, 송산리의 미암리 관세음보살입상, 도안면 광덕리의 여래석불입상 등이 있다.

이렇듯 증평에는 도지정, 군지정, 비지정문화재를 비롯하여 조상들의 유물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학창 시절 자전거로 통학하며 비포장 길 두타산을 넘나들던 저력을 발판삼아 자전거로 유적을 탐방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최근에 도안면 노암리에 위치한 추성산성(杻城山城)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문화재청이 8차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중 목조 우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우물 바닥에서 나온 백제 토기 편을 확인한 결과 백제 중앙양식 축조방식을 적용해 4세기에 축조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서둘러 답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목조 우물은 직경 100㎝, 깊이 80㎝ 규모로 판재를 서로 엇갈리게 잇대어 만들어졌다. 하부는 'ㅍ'자, 상부는 '井'자 평면형으로 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물 안에서 4세기 것으로 보이는 호두 껍데기, 복숭아 씨앗이 발견됐다 하니 그 오랜 세월동안 견디어 온 조상의 흔적도 다시 살아나는 듯 발걸음을 돌리기 쉽지 않았다.

증평군에서는 2009년부터 8차례 발굴조사를 진행해 추성산성(杻城山城)이 지방에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한성백제 시기 토축(土築) 산성임을 밝혀냈다.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은 4~5세기 백제 토축(土築) 산성으로는 도성 이외의 지방에 존재하는 최대 규모의 성곽이며,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중첩구조로 남성(南城)․북성(北城)이 배치된 구조는 추성산성(杻城山城)만이 갖는 특별한 평면구조로서 백제 성곽사 연구에 가치가 높다고 한다.

북성에서는 가야지역, 충남 서해안 및 영산강 유역의 토기기종으로 판단되는 외래기종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들 외래기종 토기류는 대체로 4세기 후반의 시기에 집중되고 있으며, 가야와 영산강 유역권과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실증자료라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추성산성(杻城山城)은 이 같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1월 증평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527호)로 지정되었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정비에 힘써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자긍심을 키워나가야 하겠다.

아름다운 증평의 중심에 유물과 유적이 어우러진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다.

문화는 삶의 지혜와 고뇌, 정열의 결정체이다. 그 결정체는 인고의 세월과 연마의 땀을 빌어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 빛이 나를, 우리를, 세기를 뛰어넘어 영원으로 치닫는다. 그리하여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끝내는 세상을 밝히고 우리의 영혼까지도 살찌운다.

혹자는 우리의 가장 고유한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세계화시대에 합류하여 동참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스며있는 고유문화를 전승하고 창달하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아름답다. 인간도 아름답다. 문화와 예술은 더욱 아름답다. 절대자가 자연과 인간을 아름답게 창조하고 지켜나간 예술인은 창작을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영혼을 아름답게 이끌어준다. 순수한 자연이, 순수한 인간이, 손수예술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감동을 준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과 문화와 예술은 더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이번 답사를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된다.

산성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연암저수지 지질생태공원도 들러보았다. 연암저수지 일대는 신갈나무 등 7개 군락이 분포하는 식물자원과 검은등뻐꾸기 등 44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크다. 주변에는 수십억 년 전 생성한 선캄브리아 편마암과 약 1억 년 전 중생대 시기 화성암, 백악기 퇴적암 등이 분포돼 있다. 작은 출렁다리와 주변의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풍광이 아름답다.

우선 연암저수지를 따라 총 1.5km의 데크길을 걸으면서, 중간에 길이 84m의 출렁다리를 사뿐사뿐 건너가 본다. 연암저수지는 원래 농업용 치수시설로 지어진 인공 저수지인데, 증평군에서 동식물과 지질자원의 보전 및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질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가족과 함께 찾기 좋은 공원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 높게 평가된다. 더욱이 중간 중간 멋진 경치를 보며 쉴 수 있는 공간들도 잘 마련되어 있다. 차후 가족과 함께 또 한 번 나들이를 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도안을 사랑해왔다. 아름다운 토성을 쌓고 슬기를 담아 둔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향기가 샘솟는 증평의 옹달샘 같은 곳. 증평은 도안을 품고 도안은 높고도 깊은 향기를 품어 증평을 지켜내고 있다. 조상이 남긴 그 향기 오래 지니도록 더욱 지혜와 마음을 모을 일이다.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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