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청주 중앙공원을 산책했다. 중앙이라는 이름처럼 청주시내 중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구경할 것이 많아 종종 찾는 곳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삼삼오오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과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중앙공원은 옛 정취가 가득하다. 입구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5로 지정된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이 눈에 띈다.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던 것으로 당초 충남 해미현에 있었던 것을 1651년 효종 2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높은 주춧돌 위에 세운 2층의 누문이 한국적인 미를 느끼게 한다. 북측 출입구에 망선루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이다. 충청도에 몇 개 남지 않은 고려시대의 목조 건축물로 세조 7년에 한명회가 누각의 편액을 취경루에서 망선루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굵은 선과 처마는 조화로운 모습이다. 건축물과 주변과의 경관이 잘 어울리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문 앞에는 늠름한 모습의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수령만 해도 약 900년으로 추정되는 충청북도 기념물 5호인 ‘청주압각수(淸州鴨脚樹)’다. 높이 30m, 둘레 8m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지리서 중 하나인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고려시대 10여명이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청주옥에 갇혔는데 이때 큰 폭우가 쏟아져 성안에 물이 차고 홍수가 났다. 옥리와 죄수들이 마침 이 압각수에 올라 화를 면하였다는 기록이다. 압각수라는 이름은 은행나무의 잎이 물갈퀴 달린 오리의 발과 비슷하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이를테면 모든 은행나무의 별명이 압각수인 셈이다. 이 일대는 고려시대 이후 관아가 있던 곳으로 지금 남아있는 압각수 외에도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공원에 남은 은행나무는 압각수 뿐이다.

중앙공원은 청주의 비림(碑林)이라고 불리는데 비림이란 중요한 비문이 숲을 이룬다는 뜻이다. 먼저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청주 척화비’가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23호인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백성들에게 서양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고자 서울과 전국 교통요지에 세운 비다. 앞면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글을 새겨 강력한 쇄국의지를 보여준다. 척화비는 윗 부분이 깨어져 없어졌는데 1976년 노상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하였다고 전해진다. 고종 8년에 세웠다가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기 때문에 현재 몇 기의 척화비만 곳곳에 남아있다. 그 밖에도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의 주역이었던 ‘조헌기적비’, 구한말에 의병장으로서 20여회에 걸쳐 의병투쟁을 하고 청주 세교리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의병장 한봉수의 ‘송공비’, 조선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기허당 영규대사 기적비’, 194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독립기념비’ 등이 있다. 오래된 돌에 새겨진 비석들을 보며 앞으로 우리 지역에 또 어떤 기념비적인 일들이 펼쳐질까 상상하며 공원을 거닐어보자.

 

/ 이기수 충북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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