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은 보드랍다. 아스팔트에서 느낄 수 없는 따듯함이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속도’가 있다면 옛길에는 ‘온도’가 있다. 푹신한 흙길은 발바닥에서 전달되는 힘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포장된 도로는 전해지는 힘을 다시 밀어낸다.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발바닥이 더 피곤한 까닭이다. 옛길을 걸으면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많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습기를 머금은 흙의 냄새, 나뭇잎, 꽃, 개미들이 한데 어울려 주변의 존재와 감응한다.

개발의 최전선에 ‘길’이 있다. 잘 닦아놓은 도로가 모세혈관처럼 퍼져 산맥을 이룬다. 촌스럽고 구불거리는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옛길이 사라지는 시대다. 인위적으로 조성해놓은 반듯한 도로는 깨끗해 보일 뿐 그 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에 반해 오솔길이 있는 옛길은 자유롭고 다정하며 계절마다 변주한다. 저기 모퉁이를 지나면 오래된 친구와 재회할 것 같은 상상, 예상하지 못한 풍경과 존재를 마주칠 것 같은 기대감이 더해진다.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옛길, 18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충주의 ‘하늘재’다. 하늘재는 지금의 문경과 충주시 미륵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156년 신라의 이사금 왕이“계립령 길을 열었다”라는 기사가 남아있다. 이를테면 한반도 최초의 고속도로인 셈. 왕복 4.2km의 길은 유순하여 걷기 쉽다. 완만한 경사와 울창한 숲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평강공주의 남편이자 한 나라의 부마였던 바보 온달은 군사적 요충지였던 계립령을 탈환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는 삼베옷을 걸쳐 입고 고갯길을 넘었다. 교과서 속 활자로만 존재하던 인물들이 풍경으로 소환된다. 하늘재길은 누군가의 굳은 다짐과 망국의 한이 서린 길이다.

하늘재는 기대감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기 위해 선비들이 이용했기에‘과거길’로 불렸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했던 영남의 선비들이 선호했다. 추풍령, 죽령, 문경새재의 세 길 중 문경새재가 가장 빨리 한양에 당도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시험에서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쪼개지거나 죽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문경이라는 이름의 옛 지명은‘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인 ‘문회’다.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들은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부푼 마음으로 지나갔을 것이다.

하늘재 정상석을 기준으로 문경의 관음리와 충주 미륵리로 나뉜다.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관음보살과 미래에 세상을 구원하는 미륵보살 사이에 하늘재가 있다. 늙으신 부모님과 처자식이 마음에 밟힌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건넜을 것이다. 보따리를 한 아름 진 보부상도 생계를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 성취하고 싶은 것에는 늘 두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걷고 경계를 넘는 이유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은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 한 점 불어온다. 나뭇잎 사이로 엷은 햇살이 비춘다.

 

/ 이기수 충북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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