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5학년 때인가 누에를 처음 보게 되었다. 학교 사택에서 살 때에 어머니가 옆방하나를 누에 방으로 만들고 한방 가득 누에를 키워내고 계셨다. 가끔 그 방에 들어서면 누에들이 뽕잎을 잘라먹는 소리가 사각사각 귓가를 흔들었다. 서로 곁에서 모여 있으며 사람을 피해 멀리 숨지 않고 뽕잎에서 일생을 사는 누에가 귀여워서 만져본 일도 있는데 그리 징그럽지도 않았다. 이 누에가 자라서 고치를 짓고 비단실을 토해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지는 그땐 정확히 몰랐다. 의아한 것은 그 고운 비단실을 토해내는 누에가 초록 뽕나무 잎만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그 옛날 누에를 키울 수 있는 것도 관사 뒤로 넓은 밭에 뽕나무가 자라고 있기에 나도 몇 번이나 어머니를 도와 뽕잎을 따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누에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없어 그 시절이 꿈속처럼 그립기도 하고 마침 청주역 가는 길에 한국잠사박물관에 들러 보기로 하였다. 행운일까? 뽕나무 열매인 오디 수확철이 닿아 오디따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입장료를 내니 비닐곽을 주고 한 가득 따서 나오면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뽕나무 밭을 떠올리며 들어갔는데 드넓은 밭에 줄지어 선 뽕나무가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고 잎반 열매반 검붉게 익은 오디가 마치 꽃처럼 달려있다. 농사기술도 좋지만 거름도 좋은지 맛도 달콤하니 여러 모양의 오디를 따서 입에 넣으며 편히 서서 맘껏 따보았다. 나오는 길에 폐관시간이 남아 박물관 1,2층을 돌아보라 한다. 우리나라 누에치기 역사와 그 작은 누에가 사람에게 베푸는 정도가 실로 놀라울 지경이다. 그러기에 하늘이 인간을 위해 내려 준 곤충으로 누에를 천충(天蟲)이라 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에는 의류의 소재인 비단을 공급하고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의 건강을 도우며 양잠농가에는 근면과 부를 주어 나라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희생된 누에를 위로하며 한해의 누에농사를 시작하기 전 농사의 풍요를 기원한다는 풍잠기원제(잠령제)를 올렸다하니 누에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깨달은 조상들의 슬기에 머리가 숙여지기도 한다.

박물관 1층 입구 좌측에는 실제 누에들이 뽕잎을 먹으며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누에 한 살 이 코너를 마련해 놓았다. 금방 알에서 깨어난 잘 보이지 않는 개미누에부터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며 80mm까지 자란 5령의 누에까지 내가 그 옛날 보던 그런 누에를 다시 만나보니 큰 위로를 받는다. 사람들이 와서 만져보고 떠들어도 누에는 뽕잎 먹기에 여념이 없고 그들이 만든 고치 섶도 진열해 놓았다. 고치의 모양은 타원형보다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알맞은 때 고치를 잘 짓도록 사람이 도와주면 좋은데, 마지막 5령 누에가 일주일 정도 뽕잎을 먹고 나면 몸에 푸른색이 줄고 투명해지면 때가 된 것이라 한다. 어느 덧 몸속에 실샘이 차면 0.002mm의 비단실을 토해내어 3일간에 걸쳐 고치를 짓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어찌 혼자 그리 멋진 작품을 지어내는지? 그런데 내 시선을 잡은 것은 나방 두 마리가 기진하여 누워있고 그 주위에 아주 작은 알들이 수없이 보이는 것이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고치를 짓고 난 누에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탈바꿈을 하는데 이 번데기가 약 10여일이 지나면 나방이 된다고 한다. 나방은 입에서 알카리 액을 내어 고치 한 쪽을 축축하게 적신 뒤 고치를 뚫고 나오는데 놀라운 것은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오자마자 암수가 짝짓기를 한단다. 이후 암나방은 500여개의 알을 낳고 두 누에나방은 7-9여일 후에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2세를 남기기 위해 고치를 짓고 날지 않는 나방이 되어 조용히 숨을 내려놓는 약 49일의 누에의 일생이 너무 짧아서 마음이 짠하고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왜요?”

안내원이 이상하다는 듯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누에가 너무 안 돼서’

나방이여! 네가 누에 되어 얼마나 살았다고 온 몸 바쳐 그 많은 알을 낳고 떠나는가? 먹이를 주면 다만 얼마라도 살지 싶은데 누에나방은 입이 퇴화하여 먹이를 먹을 수 없다니 이토록 애석한 일이 어찌 누에나방의 길인가? 그 섭리가 미울 뿐이다. 힘없이 쳐진 나방의 날개 위에 내 눈물이 고이듯 안쓰러워서 그 곁을 한참이나 떠나지 못한다. 미물이지만 한 바닥 알을 남기고 편안히 누워있는 그 형상이 어쩌면 거룩해 보일지라도......

생명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언젠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인가? 어느 날 죽을지라도 또 하나의 생명을 잇기 위해 아낌없이 내 놓는 자연 순환의 이치에 마음을 접는다. 고치에서 나와 단 며칠이라도 하늘을 날다 짝을 구해 사랑을 하고 다만 한 달이라도 맑은 계곡에 가서 물소리 듣고 새벽이슬 받아먹고 그러다 가면 좋은데 누에나방 너는 오로지 알을 낳고 스러지는구나. 너의 몸을 빌어 인간들이 비단을 입고 춤추고 있다. 미안하다. 저 하늘 자유로운 곳에 가서 훨훨 날아다니거라. 세상 떠난 이 땅의 모든 누에나방들이여. 너 어린 날개달린 성자여! 아직 너를 사랑한다.

 

박 종 순  전 복대초 교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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