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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9.06.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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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이하 생략)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라는 노래가 인기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쉬운 가사로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유치원 꼬마들도 이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를 정도이다.

사랑 앞에서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각기 다른 색깔의 사랑이겠지만, 사랑 앞에서 울고 웃는 모습들을 보면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공통어인 듯하다.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것이 옛날에 쓰인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사랑을 만날 때가 있다. 요즘은 자유연애가 자연스럽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작품들을 가끔씩 만나기 때문이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춘향전’ 못지않게, 자유연애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애틋한 고전 소설 중에는 ‘이생규장전’과 ‘운영전’이 있다. 특히 이 소설들은 소설 중간 중간에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를 넣어 작품의 운치를 더한다.

‘이생규장전’은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집인 ‘금오신화’에 실려 있다. ‘금오신화’에는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 ‘이생규장전’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생이 담장을 엿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생이라는 서생이 왜, 어느 집 담장을 엿보았을까?

재주가 비범하고 학문에 뜻이 있는 열여덟 살 서생 이생이 엿본 담장 안의 여인은 최랑이다. 열여섯 나이의 최랑은 자태가 아름답고, 시문에 능통한 귀족 가문의 처녀이다. 이생이 공부하러 국학에 오갈 때면 수양버들로 둘러싸인 최랑의 집 북쪽 담을 지나가야한다. 어느 날 이생이 이 곳 나무 그늘 밑에서 쉬다가 우연히 담장 안을 엿보았는데, 만발한 꽃들 사이에 구슬발이 반쯤 가려진 다락에서 어여쁜 아가씨가 수를 놓다가 잠시 턱을 괴고 앉아 시를 읊고 있었다.

“저기 가는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일까?

푸른 옷깃 넓은 띠, 버들가지 사이로 비치네

이 몸이 죽어서 제비라도 된다면

구슬발 가볍게 걷고 담장 위를 날아 넘으리” (‘한국고전소설 40’ 中에서)

이 시를 들은 이생은 어느 날 국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를 적어 기와 쪽에 매달아 담장 안으로 던진다. 이렇게 둘의 만남은 시작되었지만, 사랑은 순탄치가 않다. 이생의 부모님의 반대로 둘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혼인을 하지만,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난을 가다 최랑이 죽게 된다. 그 후 최랑은 잠시 환생하여 이생과 행복하게 지내다가 헤어지고, 이생은 최랑을 그리워하다 결국 최랑을 따라 하늘나라로 간다. 최랑이 죽은 줄 알면서도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하는 이생에게서 사랑의 위대한 힘이 느껴진다.

‘운영전’은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은 사랑이야기이다. 어느 날 유영이라는 선비가 임진왜란으로 옛 자취를 잃고 잡초만 무성한 수성궁 누각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 구조를 띤다.

수성궁은 안평대군이 궁궐에서 나와 거처하던 사궁으로, 열일곱 살 나이의 운영은 그 수성궁의 궁녀이다. 어느 날 김 진사라는 나이어린 선비가 안평대군의 집을 찾아 왔다가 대군의 권유로 시를 한 수 짓는 자리에서 운영을 보게 된다. 김 진사가 마치 학을 타고 세상에 온 신선처럼 느껴진 운영은 첫 눈에 반하여 김 진사를 향한 마음을 담은 시 한 수를 지어 보낸다.

베옷에 가죽 띠를 맨 선비

옥 같은 용모가 신선과 같은데

발 사이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건만

어이하여 월하(부부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전설의 노인)의 인연이 없는고

흐르는 눈물로 얼굴을 씻으니

거문고를 타면 한이 줄에 우네

끝없이 일어나는 가슴 속 원망을

머리 들어 하늘에 하소연하오 (‘한국고전소설 40’ 中에서)

궁녀라는 신분 때문에 사랑해서는 안 되는 운영을 사랑하게 된 김 진사 또한 운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를 적어 보낸다.

저녁의 누각에 문 닫혔는데

나무 그늘 그림자 희미하여라

꽃은 떨어져 시냇물 위로 흐르고

어린 제비 흙을 물고 집으로 찾아 가네

잠자리에 누워도 이루지 못할 꿈

먼 하늘엔 기러기도 없구나

눈에 선한 임 아무 말 없는데

꾀꼬리 울음소리에 옷깃을 적시네 (‘한국고전소설 40’ 中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그리움의 간절함을 이렇게 시로 주고받던 운영과 김 진사는 결국 현실 속에서는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한다.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된 운영은 김 진사와의 사랑이 발각되어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김 진사 역시 운영이 죽은 뒤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음에 이른다. 궁중에 갇혀 살아야하는 궁녀들의 제한된 삶, 억압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궁궐이라는 닫힌 공간을 넘어 자유연애를 쟁취하려는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연인형. 프리랜서 독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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