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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9.06.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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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났다. 《꿈속 나의 에스메랄다》라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내 공연 팀 멤버다. 삶이 분주한 나는 공연팀, 운동팀, 토론팀, 스터디팀, 여행팀, 전원팀 이렇게 팀별로 나누어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포장을 풀자 자개로 수 놓여 진 필통이 반짝이는 얼굴이 보였다. 필통 안에는 볼펜이 있었다. 지워지는 볼펜이라 했다. 그런 볼펜이 있냐며 신기해하는 내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글을 쓰는 내게 꼭 필요할 것 같아 샀다고. 그녀의 고운 마음이 느껴졌다. 도란도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는 공연장을 향했다.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를 민중 작가의 반열에 놀려놓은 《파리의 노트르담》을 무용으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표를 예매했었다. 책으로나 뮤지컬 그리고 영화로는 접했으나 무용으로 좀 생경했다. 평소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좋아했던 나는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다.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의 삶을 확대하여 투영하고, 그 속에 싹트는 풀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담는 그의 작품, 그러면서도 사회와 역사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접할 때마다 매번 다른 빛깔로 나를 물들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 그녀에 대한 뒤틀린 연정에 사로잡힌 노트르담의 부주교 프롤로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펼치는 무용수들의 열연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콰지모도의 눈빛이 머릿속에 가득 떠 다녔다. 영화나 책으로 보았을 때와 또 다른 감동이 몰려왔다. 몸을 통한 말 없는 말로 표현한 아픔이 내 머릿속으로 옮겨와 많은 말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운이 떠나지 않았다. 책장에서 위고의 다른 작품 《레미제라블》을 꺼내보았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레미제라블. 굶주림 때문에 빵 한 조각을 훔쳐 전과자가 되었다가 속죄와 자기희생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장발장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위고는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예수가 되고, 하느님이 되는지'를 그려 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통해서도 당시 프랑스의 사회와 역사를 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되새김질하며 불쌍한 사람들을 떠 올려보았다. 콰지모도, 에스메랄다, 장발장, 코제트, 팡틴느 그리고 나!

과연 불쌍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경제적으로 빈곤하다고 불쌍한 사람일까? 힘이 없다고 불쌍한 사람일까? 아픈 사람일까, 못생긴 사람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마음이 궁핍한 사람,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볼 눈이 없는 사람, 아마도 그들이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불쌍한 사람이 아닐까? 내 마음의 창고를 연다. 천천히 빗장을 열고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 다 본다. 캄캄한 창고 안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안쪽 구석에는 둘둘 말린 욕심의 멍석이 서 있고, 군데군데 질투의 거미줄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창고 바닥에는 깨진 이기심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쓸 만한 것이라고는 한 개도 발견할 수 없는 축축한 창고 안에는 오만의 입자가 폴폴 떠다니고 있다. 나도 인생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이쯤에서 내 창고를 한 번쯤 리셋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훅 스친다.

문득 그녀가 준 필통을 열어본다. 지워지는 볼펜을 꺼낸다. 어두운 내 창고 속에 들어있는 것들의 목록을 써본다. 오만, 욕심, 질투, 이기심...... 참 불쌍하게 살았다. 나만의 안위를 위해서 건들거리면 펜을 잡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면서 다른 사람의 사는 모습도 아파하면서 내 마음을 풀어내야 했는데, 아픈 나만 돌보느라 엄살을 부리며 살았다.

내 창고에서 보았던 불쌍한 것의 목록을 지워지는 볼펜 뒤 꽁무니로 지워본다. 그리고 앞으로 내 창고 안에 채워야 할 목록을 새로써 본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는 손,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따듯한 눈길, 작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는 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나를 돌아본다. 이젠 불쌍하게 살지 말자고, 지워버릴 삶은 쓰지 말자고 가는 계절의 뒷등을 보며 삐걱거리는 창고 문을 닫는다.

 

/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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