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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9.05.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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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비밀의 화원‘ 동화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에도 아름다운 꽃과 싱그런 식물이 가득한 화원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틈틈이 화초를 길러 보았지만,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화초에 대한 지식이 없는 탓인지, 잘 키워 내지를 못하였다. 화초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자식을 키우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특히 어머니의 모성애는 소설 속에서도 애틋하다. 자식의 앞날에 누가 될까봐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어머니,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어머니, 물질적으로 자식에게 해 준 게 없어 미안해하는 어머니, 자식의 미래를 위해 억척스럽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머니……. 각기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그 지극한 정성과 사랑만큼은 자식의 앞날의 행복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같을 것이다.

주요섭의 단편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는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딸 옥희를 키우면 살아가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는 옥희네 집 사랑방에 하숙을 든 사랑방 손님과 서로 좋은 감정을 느끼지만,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머니는 재혼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시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옥희의 앞날에 누가 될까봐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것이다.

전영택의 ‘화수분’에서는 한 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부부가 얼어 죽으면서도 어린 자식만은 살려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픈 형을 대신해 일을 하러 고향에 내려간 화수분이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화수분의 아내는 어린 아이를 업고 화수분을 찾아간다. 아내의 편지를 받고 아내를 데리러 달려간 화수분은 해질 무렵 어느 높은 고개에 올랐을 때 어린 아이를 꼭 안고 웅크리고 떨고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나무 밑 눈 위에 나뭇가지를 깔고 어린 것 업은 홑 누더기를 쓰고 한 끝으로 어린 것을 꼭 안아 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 화수분은 달려들어 안았다. 어멈은 눈은 떴으나 말은 못한다. 화수분도 말을 못한다. 어린 것을 가운데 두고 그냥 껴안고 밤을 지샌 모양이다.

이튿날 아침 나무장사가 지나가다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깨인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 것만 소에 싣고 갔다.”(‘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대표소설37’ 中에서)

부모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뒤늦게 노모의 사랑을 깨닫는 이청준의 ‘눈길’. 이 소설에는 박복하여 부모 노릇을 다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장남의 주벽으로 가계가 파산하여 집마저 팔게 된 어머니. 어머니는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작은아들이 집에 왔을 때, 정든 집에서 마지막 밤이라도 지내게 해주고 싶어 한다.

“팔린 집이나마 거기서 하룻밤 저 아그를 재워 보내고 싶어 싫은 골목 드나들며 마당도 쓸고 걸레질도 훔치며 기다려온 에미였는디, 더운 밥 해먹이고 하룻밤을 재우고 나니 그만만 해도 한 소원은 우선 풀린 것 같더구나.”(‘꼭 읽어야 할 소설 119’ 中에서.)

노모는 다음날 학교로 돌아가는 아들을 위해 새벽 눈길을 걸어 산길을 넘어 차부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서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린다.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것냐. 눈발이 그친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중략)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꼭 읽어야 할 소설 119’ 中에서.)

박완서의 연작소설 중 하나인 ‘엄마의 말뚝1’(세계사 펴냄)에서는 남편을 잃고 아들, 딸 두 어린 남매를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가 나온다. 소설 속의 엄마는 아들을 출세시키고, 딸을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여성은 서울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거란다. 신여성이 되면 머리도 엄마처럼 이렇게 쪽을 찌는 대신 히사시까미로 빗어야 하고, 옷도 종아리가 나오는 까만 통치마를 입고 뾰죽구두 신고 한도바꾸 들고 다닌단다.”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엄마의 말뚝1’ 中에서.)

엄마는 서울 사대문 밖 현저동 꼭대기 초가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면서 온종일 화롯불을 옆에 끼고 앉아 삯바느질을 해서 번 돈으로 자식들을 교육시킨다. 그 후 기와집을 사서 이사하면서 엄마는 악착같이 서울에 말뚝을 박고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고전소설 ‘이생규장전’에서도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딸 바보 부모가 등장한다. 최랑은 사랑하는 이생과 헤어져 만나지 못하게 되자 시름시름 앓아눕는다. 최랑의 부모는 우연히 딸이 이생과 주고받은 시를 보고서야 귀중한 딸을 잃을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는 이생이 아니면 다른 가문과 혼인하지 않겠다는 딸의 확고한 마음을 알고는 중매인을 보낸다.

“비록 우리 아이가 나이가 어리고 바람이 났다 하여도 학문에 정통하고 얼굴이 유다르니 장차 대과에 급제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것이니 함부로 혼사를 정하지 않겠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귀댁의 도령은 재화가 뛰어나다하니, 비록 지금 몹시 곤궁할지라도 장래엔 반드시 현달할지니, 빨리 만복의 날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꼭 읽어야 할 고전소설 39선’ 中에서)

이생의 부모가 자신의 집이 가난한 선비의 집인 점도 이유를 들어 혼인을 거절하자, 최랑의 부모는 딸자식을 위해 간청한다. 혼인에 필요한 모든 예물과 의장을 자신들이 담당하겠다며 간절히 요청하여 이생 부모의 마음을 돌려놓아 딸의 혼인을 성사시킨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가정의 달 5월에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 연인형 프리랜서 독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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